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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화에 중독된 고린도 교회, 어떻게 벗어났을까요?

도시에서 만난 바울

by 마을꼰대 2025. 8. 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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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의 분열, 로마 문화가 원인이었다고?

여러분, 혹시 고린도 교회라고 들어보셨나요? 약 2천 년 전 고대 로마 시대에 있었던 교회인데, 이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시끄러웠다고 해요. 바울이라는 인물이 이 교회를 세웠는데, 왜 이렇게 복잡한 일들이 생겼을까요? 자, 그럼 지금부터 고린도 교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함께 파헤쳐 볼까요? 고린도 교회의 분열이 바로 로마 문화때문이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화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답니다. 이 글을 통해 로마 시대의 문화와 교회의 모습을 함께 알아보아요.

 

1. 고린도 교회가 시끄러웠던 이유: 로마의 '후견인 시스템' 때문! [5]

  • 고린도 교회는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방식 때문에 크게 혼란스러웠다고 해요 [5].
    • 로마 제국은 강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세계를 정복한 다음, 황제를 신처럼 섬기게 하려고 "후견인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만들었죠 [6].
    • 이 후견인들은 황제와 일반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답니다 [8].
     
  • 특히 고린도 지역은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스스로 후견인이 되려는 야심가들이 정말 많았어요 [9].
    • 노예에서 해방되어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높이고 싶어 했고, 고린도 교회는 이런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기회였죠 [11].
  • 이런 후견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어요 [12].
    • 그들은 로마 방식의 후견인 네트워크를 교회 안으로 그대로 끌고 들어왔고 [13], 그 결과 식사 문제, 무질서한 방언 사용, 우상 숭배 제물 문제 같은 여러 갈등이 일어났답니다 [14].
    • 심지어 부자 교인들은 가난한 교우들이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식사를 해버리는 일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무질서하게 방언을 사용해서 교회의 공동체를 흔들었어요 [15].

2. 로마 황제가 '최고의 아빠'였다고? 후견인 시스템의 비밀! [18]

  • 로마 사회는 마치 거대한 가족처럼 후견인과 피후견인 관계로 얽혀 있었다고 해요 [18].
    • 이 시스템의 꼭대기, 즉 최고의 후견인은 바로 로마 황제였어요 [20].
    • 예를 들어, 황제 네로는 자신을 '최고의 패트론', 즉 가족 국가를 이끄는 최고의 아버지라고 내세웠답니다 [21].
  • 하지만 바울은 이런 로마의 문화에 맞서 다른 가치를 제시했어요 [22].
    • 그는 진정한 아버지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23],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고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형제자매라고 선언했죠 [24].
    • 바울은 교회가 로마의 후견인 시스템을 거꾸로 뒤집는 곳, 즉 하나님 나라의 후견 문화를 만드는 곳이 되기를 원했어요 [25].
    • 결국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후견인이라고 강조하며, 로마의 후견인 문화에 침투한 교회 본질을 지키려 노력했답니다 [27].

3. 교회 안까지 들어온 로마 문화, 어떤 문제들을 일으켰을까요? [29]

  • 로마의 후견인 문화는 고린도 교회에 정말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고 해요 [29].
    • 당시 로마 사회는 부유한 후견인들이 돈을 대주면서 상업, 시민, 종교 조직을 움직이는 식이었고 [30], 고린도에는 자신의 지위와 돈을 높이려는 야심가들이 넘쳐났죠 [31].
    •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혼란이 시작된 거예요 [32].
  •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식탁 문제였어요 [33].
    • 부유한 교인들이 가난한 교인들이 오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식사를 해버렸는데, 이건 로마의 힘센 사람들이 하던 식사 문화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답니다 [33].
  • 또 다른 문제는 무질서한 방언 사용이었어요 [35].
    • 로마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통제되지 않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36].
  • 심지어 우상 숭배 제물로 쓰인 고기를 먹는 문제도 있었는데 [37], 이것 역시 로마 제국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여오려 했던 풍습이었답니다 [38].
  • 바울은 이런 후견인 그룹의 행동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고린도전서를 썼어요 [39].
    • 이 책은 로마의 후견인 조직이 교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치유의 시작이었다고 해요 [40].

4. 바울의 특급 처방전: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장, 13장 사랑장, 15장 부활장! [41]

  • 고린도 교회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편지를 썼는데, 그 핵심 내용이 바로 고린도전서 12장, 13장, 15장이에요 [42].
    • 각각 은사장, 사랑장,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이 장들에는 바울이 로마의 후견인 체제에 맞서 제시한 해결책이 담겨 있답니다 [43].
핵심 메시지 로마 문화와의 대조점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장) 은사의 목적은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며, 모든 은사는 성령님께로부터 온다 [45] 은사를 통해 개인의 지위나 권력을 높이려는 로마 문화와 반대 [50]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모든 은사보다 더 큰 길은 사랑이며,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55] 즉각적인 보상, 권력 과시, 자기 과시, 속임수를 추구하는 로마 문화와 대조 [57]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 낡은 이기적인 자아는 죽고, 새로운 공동체적인 자아로 변화하여 부활해야 한다 [71]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고 서로를 돌보지 않는 로마의 후견인 문화와 반대 [72]
  • 바울은 은사(특별한 능력이나 재능)가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고 강조했어요 [47].
    • 그는 은사가 사랑의 길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은사를 통해 지위를 높이거나 권력을 얻으려는 로마 문화와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했답니다 [49].
  • 고린도전서13장 사랑장은 모든 은사보다 더 큰 길이 바로 사랑임을 보여줘요 [54].
    • 로마 문화가 즉각적인 보상, 권력 과시, 자기 과시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과 달리 [57],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여주었죠 [59].
  • 고린도전서15장 부활장에는 낡은 자아는 죽고, 새로운 공동체로 부활하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요 [68].
    • 로마의 후견인 문화에 물들어 개인의 이익만 추구했던 이기적인 자아는 이제 사라지고 [72],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적인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랍니다 [73].

5. 로마 문화에 중독된 고린도 교회, 어떻게 벗어났을까요? [77]

  • 고린도 교회는 당시 로마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었어요 [77].
    • 약한 자를 무시하고 배제하며, 오직 개인의 출세와 권력만 추구하는 로마 문화가 마치 중독처럼 사회와 교회에 퍼져 나갔죠 [78].
    • 이런 로마 문화는 폭력, 우울, 피곤으로 가득했고 [79], 결국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가져왔답니다 [80].
  • 당시 로마 사회에는 안전한 공간이 거의 없었어요 [81].
    • 오직 귀족들만이 안전한 곳에 살 수 있었고 [82], 여성들은 남성들의 놀잇감처럼, 노예들은 비참하게 살거나 심지어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먹이가 되기도 했죠 [83].
    •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사회와 마을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했지만 [84], 고린도 교회는 로마 문화에 중독되어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서로 싸웠던 거예요 [85].
  • 하지만 초대교회는 이런 로마 문화에 맞서 새로운 대안 문화를 제시했어요 [86].
    • 예를 들어, 브르스길라의 집에서 모인 교회에서는 여성과 노예가 안전하게 모일 수 있었는데 [87], 로마의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이들이 들어갈 수 없었답니다 [88].
    • 초대교회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믿음으로 자원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었고 [89], 로마의 식민 후원 시스템을 거부하며 하나님 나라의 에클레시아(교회) 공동체를 세웠죠 [90].
  • 초대교회는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에 맞서 갈릴리 지역의 '마을 정신'을 도시로 가져왔어요. 이를 '도시 마을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답니다 [92].
    • 이 운동 덕분에 여성과 노예들도 율법이나 할례같은 구속 없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95].
    • 그들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말씀(갈 3:28)을 선서하고 교회에 들어왔는데 [96], 이것은 로마의 계층 사회와 완전히 다른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였죠 [97].
  • 이러한 노력 덕분에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강력한 지배에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답니다 [98].
    • 착취적이었던 로마 제국과 달리,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나눔과 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자율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공동체를 만들었어요 [99].
    • 그들은 로마의 후원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원을 공유했는데 [100], 바울이 시작한 국제 예루살렘 구제 모금 운동이 바로 그 시작이었답니다 [101].
    • 이 모금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 사이의 연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어요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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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이 단순히 내부 문제가 아니라, 당시 로마 제국의 후견인 문화가 교회에 침투하면서 발생했음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은사장, 사랑장, 부활장을 통해 어떻게 로마 문화에 맞서 공동체적 가치와 사랑을 강조하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 했는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만연한 개인주의와 이기심을 넘어,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고린도 교회의 분열: 로마 문화의 영향 [1]

  1.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 약 2천 년 전 고대 로마 시대에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혼란을 겪었다. [2]
  2. 로마 문화의 영향: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당시 로마 문화의 영향 때문이었으며, 문화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통해 로마 시대의 문화와 교회의 모습을 함께 알아볼 필요가 있다. [3]

2. 고린도 교회의 혼란 원인: 로마 제국의 후견인 시스템 [5]

  1. 로마 제국의 통치 방식: 고린도 교회는 로마 제국의 통치 방식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5]
    1. 로마 제국은 강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세계를 정복했다. [6]
    2. 황제를 신처럼 섬기게 하기 위해 "후견인" 시스템을 만들었다. [7]
    3. 후견인들은 황제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 [8]
  2. 고린도의 특수성: 고린도는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스스로 후견인이 되려는 야심가들이 많았다. [9]
    1. 노예에서 해방된 신흥 부자들도 많아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높이고 싶어 했다. [11]
    2.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야심가들에게 매력적인 기회였다. [11]
  3. 교회 내 문제 발생: 후견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12]
    1. 그들은 로마 방식의 후견인 네트워크를 교회에 끌어들였다. [13]
    2. 이로 인해 식사 문제, 무질서한 방언 사용, 우상 숭배 제물 문제 같은 갈등이 일어났다. [14]
    3. 부자들은 가난한 교우들이 오기 전에 식사를 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무질서하게 방언을 하는 등 교회의 공동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15]

3. 로마의 후견인 시스템과 바울의 대안 [18]

  1. 로마 사회의 후견인 관계: 로마 사회는 후견인과 피후견인 관계로 얽혀 있었으며, 마치 가족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18]
    1. 이 시스템에서 최고의 후견인은 황제였다. [20]
    2. 황제 네로는 자신을 '최고의 패트론', 즉 가족 국가를 이끄는 최고의 아버지라고 내세웠다. [21]
  2. 바울의 대안 제시: 바울은 로마의 후견인 시스템에 맞서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고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형제자매라고 선언했다. [23]
    1. 바울은 로마의 후견인 문화에 맞서 하나님 나라의 후견 문화를 만들려고 했다. [25]
    2. 그는 교회가 로마의 후견인 시스템을 거꾸로 뒤집는 곳이 되기를 원했다. [26]
    3. 결국 바울은 로마의 황제나 후견인 그룹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후견인이라고 강조했다. [27]
    4.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로마의 후견인 시스템에 맞서 교회의 본질을 지키려 노력했다. [28]

4. 로마 문화가 고린도 교회에 일으킨 문제들 [29]

  1. 로마 후견인 문화의 영향: 로마의 후견인 문화는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29]
    1. 로마 사회는 부유한 후견인들이 상업, 시민, 종교 조직에 재정적인 후원을 해주면서 지역 사회를 움직였다. [30]
    2. 고린도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높이려는 야심가들이 많았고, 이들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31]
  2. 주요 문제점:
    1. 식탁 문제: 부유한 교인들이 가난한 교인들이 오기도 전에 식사를 해버리는 로마의 힘센 자들의 식사 문화를 따라 했다. [33]
    2. 무질서한 방언 사용: 로마의 열광적인 문화에 빠져 무질서하게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35]
    3. 우상 숭배 제물 문제: 우상 숭배에 제물로 쓰인 고기를 먹는 문제도 있었으며, 로마 제국의 힘 있는 사람들이 이런 풍습을 교회에 들여오려 했다. [37]
  3. 바울의 저항: 바울은 이러한 후견인 그룹의 행동에 저항하며 고린도전서를 썼다. [39]
    1. 고린도전서는 로마의 후견인 조직이 교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치유의 시작이었다. [40]

5. 바울의 해결책: 고린도전서의 은사장, 사랑장, 부활장 [41]5.1.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장: 공동체 섬김을 위한 은사 [41]

  1. 바울의 편지: 고린도 교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장, 15장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편지를 썼다. [41]
    1.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 13장은 사랑장, 15장은 부활장으로 불린다. [43]
    2. 이 장들에는 바울이 로마의 후견인 체제에 맞서 제시한 해결책이 담겨 있다. [44]
  2. 은사의 본질: 바울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12장1-11)라고 말하며, 모든 은사가 같은 성령님께로부터 온다고 강조했다. [45]
    1. 은사는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뜻하며,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47]
    2. 은사의 진짜 목적은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다. [48]
  3. 사랑의 길로 이어지는 은사: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리라" (고전12:31)고 말하며, 은사의 방향이 사랑의 길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49]
    1. 이는 은사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높이거나 권력을 얻으려는 로마 문화와는 정반대의 메시지였다. [50]
    2. 바울은 은사가 공동체에 봉사하는 도구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51]

5.2.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로마 문화를 이기는 사랑의 힘 [53]

  1. 사랑의 중요성: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이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리라" (고전12:31)고 한 후 바로 이어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이 나온다. [53]
    1. 이는 모든 은사보다 더 큰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55]
    2. 사랑장의 메시지는 로마 문화와 아주 대조적이다. [56]
    3. 로마 문화는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고, 권력을 과시하며,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57]
  2. 사랑의 속성: 바울은 사랑의 속성을 여러 가지로 설명했다. [58]
    1. 오래 참음: 로마의 즉각적인 보상 문화와 달리 사랑은 인내심을 가진다. [59]
    2. 온유함: 로마의 권력 과시와 달리 사랑은 친절하고 부드럽다. [61]
    3.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 로마 후견인 문화의 자기 과시와는 달리 사랑은 겸손하다. [63]
    4. 진리와 함께 기뻐함: 로마의 속임수와 달리 사랑은 진실을 추구한다. [65]
    5. 이처럼 사랑은 로마 문화의 이기적인 특성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67]

5.3.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 낡은 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공동체로의 부활 [68]

  1. 부활 메시지: 고린도전서에는 중요한 부활 메시지가 담겨 있다. [68]
    1. 바울은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라고 말했다. [69]
    2. 이 말은 죽음과 부활을 넘어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
  2. 이기적인 자아의 죽음: 고린도전서의 부활장은 낡은 이기적인 자아는 죽고, 새로운 공동체적인 자아로 변화하여 부활하라는 메시지이다. [71]
    1. 로마의 후견인 문화에 물들어 개인의 이익만 추구했던 이기적인 자아는 이제 죽어야 한다. [72]
    2. 그리고 돌봄 교회와 돌봄 마을처럼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적인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 [73]
  3. 공동체를 위한 희생: 이는 우리가 이기적인 개인으로 살기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74]
    1.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메시지는 중요하며,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로 썩지 아니하는 생명의 말씀이다. [75]

6. 로마 문화에 중독된 고린도 교회의 변화와 초대교회의 대안 [77]6.1. 로마 문화의 문제점과 교회의 역할 [77]

  1. 로마 문화의 중독: 고린도 교회는 당시 로마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77]
    1. 약한 자를 멸시하고, 배제 차별하며, 오직 개인의 출세와 권력을 추구하는 로마 문화가 마치 중독처럼 로마 사회와 교회에 퍼져 나갔다. [78]
    2. 이 로마 문화는 폭력, 우울, 피곤으로 가득했으며, 고린도 사회에 만연하여 결국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가져왔다. [79]
  2. 로마 사회의 불안정성: 당시 로마에는 안전한 공간이 거의 없었으며, 오직 귀족들만이 안전한 곳에 살 수 있었다. [81]
    1. 여성들은 남성들의 놀잇감처럼 살아야 했고, 다른 사람들은 노예로 비참하게 살거나 심지어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83]
  3. 교회의 본질과 현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사회와 마을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했다. [84]
    1.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로마 문화에 중독되어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서로 싸웠다. [85]
  4. 초대교회의 대안 문화: 초대교회는 이러한 로마 문화에 대해 새로운 대안 문화를 제시했다. [86]
    1. 예를 들어, 브르스길라의 집에서 모인 교회에서는 여성과 노예가 안전하게 모일 수 있었다. [87]
    2. 로마의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노예와 여성은 들어갈 수 없었다. [88]
    3. 초대교회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믿음으로 자원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89]
    4. 그들은 로마의 식민 후원 브로커 시스템을 거부하며, 하나님 나라의 에클레시아 교회 공동체를 세웠다. [90]

6.2. 도시 속 '마을 운동'과 국제 구제 모금 운동 [92]

  1. 도시 마을 운동: 초대교회는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에 맞서 싸웠으며, 갈릴리 지역의 마을 정신을 도시로 가져왔는데, 이를 '도시 마을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92]
    1. 초대교회에 여성과 노예들이 들어올 때 율법과 할례와 같은 구속 없이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95]
    2. 단 하나의 규칙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라는 말씀을 선서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96]
    3. 이는 로마의 계층 사회와 완전히 다른,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97]
    4. 이러한 노력 덕분에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강력한 지배에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98]
  2. 나눔과 협동의 공동체: 로마 제국은 착취적이었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나눔과 협동의 정신을 기반으로 자율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99]
    1. 이러한 공동체는 로마의 후원 브로커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원을 공유했다. [100]
  3. 국제 예루살렘 구제 모금 운동: 고린도 교회에 로마의 후견인 브로커 문화가 침투해 교회가 분열되었을 때, 바울은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초기 에클레시아 정신을 다시 살리고, 마케도니아부터 아가야까지 초기 에클레시아의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국제 예루살렘 구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101]
    1.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대규모 구제 헌금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02]
    2. 이 헌금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 사이의 연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03]
    3. 사도 바울의 이 국제 모금 프로젝트는 고린도를 시작으로 로마의 식민 후견 제도와 문화가 바울이 세운 전 유럽의 작은 교회들을 흔들기 시작할 때, 이에 대한 저항으로 국제 연대적 에클레시아 운동의 모습을 가지기 시작했다. [104]
    4. 이것이 바로 작은 초대 교회 에클레시아들의 꿈이었고, 그 시작이 바로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 구제 모금 운동이었다.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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