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교회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 단순히 교인이 줄어드는 문제만이 아니에요. 사회에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 많이 떨어지고, 영적인 권위도 예전 같지 않아요 .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처럼, 교회도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죠 .
예전에는 교회가 나라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사회의 희망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 그런데 지금은 "너무 배타적이고, 돈만 밝히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는 둔감하고, 자기들만의 문제에만 신경 쓰는 고립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고요 . 이런 상황은 교회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
교회는 지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어요 . 외부의 비판을 귀담아듣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죠 .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한국 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어요 .
'비아 돌로로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승리의 길이 아니었죠 . 오히려 고난과 희생의 길, 바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뜻해요 . 교회도 세상적인 성공이나 권력을 좇는 욕심을 버려야 해요 .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자기 비움'(Kenosis)의 여정이 필요한 거죠 .
이러한 여정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마을교회' 운동이에요 . 마을교회는 교회의 '몸'이라고 할 수 있죠 . 그리고 이 여정의 신학적인 의미를 찾고 길을 밝히는 성찰이 'k-신학'이에요 . k-신학은 교회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죠 .
진정한 한국 교회의 '부활'은 마을교회와 k-신학, 이 두 가지가 온전히 하나로 통합될 때 가능해요 . 사람들이 교회의 물질주의나 이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신학적인 실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마을교회는 어떻게 '골고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요?
마을교회 운동은 교회가 기존의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의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용기 있는 선택이에요 . 이는 십자가를 향한 여정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자, 교회의 공적인 순례라고 볼 수 있어요 . 이제 교회는 교인 수 늘리기에 집중하던 20세기 모델인 '성채 교회'에서 벗어나야 해요 .
지역 사회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광장 교회'로 변해야 하는 거죠 . 이런 변화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와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라는 세계 신학의 흐름과도 잘 맞닿아 있어요 . 교회가 별도의 선교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핵심 원리예요 .
구분
20세기 교회 모델 (성채 교회)
현대 교회 모델 (광장 교회)
목표
교인 유치, 제도적 성장
지역사회 참여, 지역 위한 봉사
원리
교회 중심의 선교 과업
세상 속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
초점
내부적 관심
이웃의 고난을 함께 짊어짐
마을교회는 단순히 자선 활동을 하는 게 아니에요 . 지역 사회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함께 아파하는 신학적인 행동, 즉 '공동의 십자가를 지는 것'(co-crucifixion)으로 이해될 수 있어요 .
마을교회는 초고령화 사회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요?
한국은 2025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요 . 이는 고독, 빈곤, 질병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노년층에게 지우는 유례없는 인구 구조적 위기이죠 . 마을교회들은 이러한 위기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어요 .
예를 들어, 경기도 시흥의 사랑의은강교회는 지역의 통합 돌봄 거점 역할을 하고 있어요 . 서울 은평구의 광현교회는 재가 의료, 사회,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고요 . 이 교회들은 단순히 노인들을 돕는 것을 넘어, 복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생명망'을 구축하고 있어요 . 심지어 2026년에 시행될 '돌봄통합지원법'의 핵심 파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죠 .
무한 경쟁과 경제적 불안이 가득한 사회에서, 일부 마을교회들은 경제적 소외라는 십자가도 함께 지고 있어요 . 하.나.의.교회는 주택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바야흐로'나 '카페샘' 같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대안적인 경제를 만들고 있죠 . 이런 활동들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상생의 원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를 구현하는 예언자적인 증언이에요 .
마을교회의 '십자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마을교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어요 . 통합적인 사회 돌봄을 통해 노인 돌봄, 아동센터, 방과 후 교실 등을 운영하며 사회적 파편화나 고령화, 돌봄 위기 속에서 취약한 이들과 함께 고난받는 '디아코니아'(섬김)를 실천하고 있죠 .
경제적 연대를 통해서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공정무역 카페 등을 운영하며 경제 불평등과 불안정한 노동에 맞서 대안적인 경제 공동체로서의 '코이노니아'(친교)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 또한 마을 도서관, 문화 강좌, 공간 공유 등을 통해 문화·교육 허브 역할을 하며 공동체 공간 부재와 문화적 소외 문제를 해결하고, 대화와 삶을 위한 공적인 '광장'으로서의 교회를 보여주고 있죠 .
마지막으로, 제로웨이스트샵이나 공동체 텃밭 같은 생태적 실천을 통해 환경 파괴와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예언자적인 증언으로서 창조세계를 돌보는 데 앞장서고 있어요 . 하지만 이런 길은 쉬운 길만은 아니에요 . 재정적인 어려움, 인력 부족, 교인 감소,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오해 등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기도 하죠 .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마을교회들은 숫자나 재정, 명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있어요 . 통제적인 리더십에서 섬기는 '촉진자'(facilitator)로 변화하고, 회중 자체의 깊은 내적인 회심을 통해 '교회론적 회개'를 하고 있죠 . 심지어 마을 목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외부의 저항이 아니라 "교인들의 무관심과 반대" 같은 내부적인 갈등이라고 해요 . 하지만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의 실패가 오히려 더 하나님께 의지하게 만들고 영적인 성공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하네요 .
K-신학은 어떻게 십자가의 의미를 한국적으로 고민하고 있을까요?
k-신학은 한국의 독특한 영혼으로부터, 그리고 그 영혼을 향해 말하는 신앙을 세우려는 지적이고 영적인 노력이에요 . 이는 마을교회의 실제적인 여정에 동반되는 신학적인 '신음'이라고 할 수 있죠 . k-신학은 한국 신학이 "서구 신학에 종속되어 주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에서 출발해요 .
서구의 틀과 대화하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않고, 한국적인 신학의 목소리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 K-팝이나 K-컬처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듯이,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학적인 성찰 또한 독자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 이는 탈춤 같은 한국 문화, 퇴계 이황의 성리학, 그리고 분단과 민주화의 역사적 경험 등 다양한 문화적 뿌리에서 시작돼요 .
k-신학은 특별히 '한(恨)'과 '정(情)'이라는 한국적인 정서를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요 . '한'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응어리진 고통과 슬픔,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원통함의 집단적인 정서예요 . 신학적으로 보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절규나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민중의 신음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신학자 서남동은 민중신학자를 침묵당한 고통의 소리를 듣고 증언하는 '한의 사제'라고 했어요 .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것은 그들의 '한' 속에 현존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죠 .
반면에 '정'은 깊고 따뜻하며 끈끈한 관계적인 애착과 연대를 표현하는 독특한 한국적 개념이에요 . 사랑, 연민, 공감, 그리고 공동의 경험과 장소에 기반한 일체감을 모두 포함하죠 . '한'이 고통의 문제를 드러낸다면, '정'은 그 문제를 해결할 진정한 공동체(코이노니아)를 위한 문화적, 영적인 자원을 제공해요 . 마을교회가 환대하는 공간을 만들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현대 사회의 소외를 치유하는 '정의 신학'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분단의 십자가는 K-신학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 민족에게 가장 깊고 근원적인 '한'이에요 . 그래서 진정으로 한국적인 k-신학은 평화와 통일 문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어요 . '화목의 십자가'는 이러한 통일신학의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주는 예시예요 . 임진강언덕교회의 '화목의 십자가'는 백두산(북한)과 한라산(남한)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들어져 그 자체로 화해의 신학을 강력하게 상징하고 있죠 .
통일을 위한 정기적인 기도와 접경지역 순례 기도회는 단순한 정치적인 행동을 넘어선 전례적이고 영적인 실천이에요 . 극도의 긴장이 흐르는 장소에서의 존재 자체가 증언이 되기도 하고요 . 이들은 민족의 십자가가 세워진 바로 그 현장에서 화해의 신학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어요 .
k-신학의 핵심 개념들인 '한', '정', 통일은 고정적이고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에요 . 역사와 삶의 경험에 깊이 연결된 역동적이고 과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죠 . 고미숙 작가의 말처럼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 k-신학은 고통과 희망의 여정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길 위의 신학'(Theology of the Road)으로 재정의될 수 있어요 . 순례하는 교회를 위한 신학적인 동반자인 셈이죠 .
K-신학 핵심 개념
의미
한(恨)
고통스러운 역사적 여정의 기억
정(情)
함께하는 삶의 여정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
통일
긴 순례를 통해 도달할 미래의 목적지
마을교회와 K-신학,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마을교회의 실천적인 여정과 k-신학의 성찰적인 여정은 따로 떨어져서는 안 돼요 . 이 둘이 합쳐져야만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십자가들', 특히 청년 세대가 겪는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죠 . 마을교회가 k-신학 없이는 단순한 사회사업(NGO화)으로 전락해서 예언자적인 영적인 힘을 잃을 위험이 있어요 . 반대로 k-신학이 마을교회 없이 지역 교회의 살아있는 현실과 분리되면 공허한 지적인 유희가 될 수 있고요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물리적인 발걸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방향 설정도 모두 필요로 해요 .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높은 실업률, 극심한 경쟁, 깊은 절망감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의 위기예요 . 이는 '백수의 시대'라는 사회적인 십자가인데, 전통적인 교회가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던 부분이죠 .
고미숙 작가는 '백수'를 실패자가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프리랜서"로 재해석했어요 . 청북교회 청년교회 모델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어요 . 재정적인 독립과 사역 기획 실행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더니, 80명이었던 교인이 150명으로 성장했죠 . 이는 청년들이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이라는 능동적인 교회의 주체로 변한 결과예요 . 이 청년교회 모델은 지리적인 '마을'이 아니라 세대적인 '마을'에 적용된 마을교회 운동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권력을 내려놓는 희생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죠 .
한국 교회의 부활, 어떻게 가능할까요?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나고, 사회적인 신뢰와 영적인 활력을 되찾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길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뿐이에요 . 마을교회나 k-신학,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안 돼요 . 이 둘이 역동적으로 자기 비움을 실천하며 시너지를 낼 때 비로소 진정한 부활과 새로운 생명의 약속을 얻을 수 있죠 .
이를 위해 신학 교육도 바뀌어야 해요 . 신학교는 서구 신학을 들여오는 곳이 아니라, k-신학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로 거듭나야 해요 . 공공신학, 선교적 교회론, 마을교회 운동의 역사를 필수 과목으로 넣고, '목회적 기업가정신'이나 사회적 기업 경영 교육 같은 것도 개발해야 할 거예요 .
교단 구조도 변화가 필요해요 . 관료적인 규제 기관이 아니라, 풀뿌리 혁신을 돕는 '자원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하죠 . 대형 교회의 유지 재원을 실험적인 마을교회나 청년교회를 세우는 종잣돈으로 재분배하고, 지식 공유와 서로 격려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해요 . 지역 교회 리더십 또한 중요한데요 . 목회자들은 약함과 섬김, 협력의 리더십을 몸소 실천하며 개인적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나서야 해요 . 유일한 권위자가 아니라 평신도와 지역 주민의 역량을 키워주는 '촉진자'로 역할을 바꾸고, 지역 사회의 고통과 다음 세대의 열망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영성'을 회복해야 할 거예요 .
이 길은 분명 고난과 자기 부인의 길일 거예요 . 하지만 바로 이 십자가의 여정만이 21세기 한국 교회에 진정한 부활과 새로운 생명의 약속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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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지금 겪는 위기는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고뇌했던 순간과 같아요. 이 위기를 넘어서려면 교회는 세상의 성공 기준을 버리고, 고난과 희생의 길을 택해 지역사회와 깊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마을교회가 이 길을 실제로 걸어가고 k-신학이 그 의미를 깊이 성찰할 때, 한국 교회는 비로소 진정한 부활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1. 십자가의 고난길,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은?
지금 한국 교회는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했던 순간처럼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을 넘어, 사회적인 신뢰와 영적인 권위까지 잃어버린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했죠.
한때는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희망을 주던 교회였지만, 이제는 "배타적이고 물질만 좇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외부 목소리에는 둔감하고, 자기들만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서 더욱 고립되는 모습입니다.
2.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로의 여정
성경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셨던 길은 영광이 아니라, 고난과 희생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를 의미해요.
이 길은 교회가 세상적인 성공이나 권력을 좇는 욕심을 버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자기 비움(Kenosis)'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자기 비움'의 여정을 한국 교회에 적용하는 두 가지 중요한 움직임이 있어요.
마을교회는 이 길을 일상 속에서 직접 실천하는 몸짓이라면 ,
K-신학은 이 길의 영적인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밝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죠.
graph TD A["한국 교회의 위기"] --> B{"고난과 희생의 길 (Via Dolorosa)"} B -- "실천적 움직임" --> C["마을교회 ('몸', praxis)"] B -- "신학적 성찰" --> D["K-신학 ('정신', theoria)"] C & D --> E["한국 교회의 진정한 '부활' (통합적 순례)"]
결국,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이 두 가지, 즉 마을교회의 '실천'과 K-신학의 '성찰'이 온전히 하나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3. '성채 교회'에서 '광장 교회'로: 마을교회의 변신
마을교회 운동은 교회가 안전한 성벽 안에 머물던 모습에서 벗어나, 세상의 어려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용기 있는 선택이에요.
이는 20세기 교인 수 늘리기에만 집중했던 '성채 교회' 모델에서 벗어나 ,
지역 사회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광장 교회'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선교적 교회'와 '공공신학'이라는 세계 신학의 중요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교회가 특별한 선교 활동을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핵심 원리입니다.
이는 이웃의 고난을 내 것처럼 여기고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4. 마을교회가 실천하는 '공동의 십자가'
마을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있어요.
초고령화 사회에서 노년층이 겪는 고독, 빈곤, 질병의 십자가에 대한 응답으로 ,
경기도 시흥 사랑의은강교회나 서울 은평구 광현교회처럼 노인 통합 돌봄의 거점이 되어 복음적인 '생명망'을 만들고 있죠.
경제적 소외라는 십자가를 위해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
순수한 이윤 추구가 아닌 연대와 상생의 대안 경제를 만들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마을교회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필요에 응답하며 십자가 형태의 실천을 하고 있어요.
십자가 형태의 실천
지역사회 문제
교회의 역할
통합적 사회 돌봄
사회적 파편화, 고령화, 돌봄 위기
취약한 이들과 함께 고난받는 디아코니아 (섬김)
경제적 연대
경제 불평등, 불안정 노동
대안적 경제 공동체로서의 코이노니아 (친교)
문화·교육 허브
공동체 공간 부재, 문화적 소외
대화와 삶을 위한 공적 '광장'으로서의 교회
생태적 실천
환경 파괴, 소비지상주의
예언자적 증언으로서의 창조세계 돌봄
5. 실패와 자기 부인: 진정한 성장을 위한 십자가
마을교회 운동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움과 오해에 직면하고 있어요.
재정적인 어려움, 일손 부족, 교인 감소는 물론, 지역 주민들이 교세 확장을 위한 활동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인들의 무관심과 반대 같은 내부적인 갈등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세상적인 기준의 '실패'는 오히려 동기를 순수하게 하고, 하나님께 더 깊이 의지하게 하는 영적인 성공의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이는 수적 성장이나 재정적 안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
목회자들이 통제적인 리더십에서 섬기는 조력자로 바뀌며 ,
교회 구성원 모두가 깊이 회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 K-신학: 한국의 '한'과 '정'으로 십자가를 이해하다
K-신학은 한국 고유의 정서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신앙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이에요.
이는 서구 신학에 갇혀 있던 한국 신학이 주체성을 되찾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부활'의 시도입니다.
K-팝이나 K-컬처처럼, 한국의 경험이 담긴 신학적 성찰도 고유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K-신학은 '한(恨)'과 '정(情)'이라는 한국인의 감정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합니다.
'한'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응어리진 슬픔과 원통함을 의미해요.
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절규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민중의 고통을 한국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정'은 깊고 따뜻하며 끈끈한 관계적 애착과 연대감을 나타내는 한국 고유의 개념이에요.
'한'이 고통을 보여준다면, '정'은 그 고통을 치유하고 진정한 공동체를 만드는 힘을 제공합니다.
7. 분단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K-신학
한반도의 분단은 한국 민족의 가장 깊은 '한'이자 십자가이기에, K-신학은 통일 문제를 핵심 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임진강언덕교회의 '화목의 십자가'처럼 북한 백두산과 남한 한라산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그 자체로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들은 단순한 정치적 행동을 넘어, 정기적인 통일 기도회나 접경지역 순례를 통해 화해의 신학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결국 K-신학은 고통과 희망의 여정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길 위의 신학'이에요.
'한'은 고통스러운 역사적 여정의 기억이고 ,
'정'은 함께하는 삶의 여정을 통해 형성되며 ,
'통일'은 이 긴 순례를 통해 도달할 미래의 목적지인 셈이죠.
8. 통합적 순례: 몸과 영혼이 함께 가는 길
마을교회의 '실천'과 K-신학의 '성찰'은 따로따로 갈 수 없어요.
K-신학 없는 마을교회는 단순한 사회 사업(NGO)으로 전락하여 영적인 힘을 잃을 수 있고 ,
마을교회 없는 K-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이론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청년 세대가 겪는 높은 실업률과 절망감이라는 '백수의 시대'는 교회가 응답해야 할 또 다른 사회적 십자가예요.
청북교회처럼 청년들에게 재정적 독립과 사역 기획의 전권을 주는 모델은 ,
청년들이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교회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게 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요.
9. 한국 교회의 부활을 위한 새로운 길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즉 고난과 자기 부인의 길뿐입니다.
마을교회의 실천과 K-신학의 성찰이 함께하는 '역동적인 시너지'만이 진정한 부활의 가능성을 줍니다.
이를 위해 신학 교육, 교단 구조, 지역 교회 리더십 모두 변화해야 해요.
변화의 주체
현재의 모습
나아가야 할 방향
신학 교육
서구 신학의 수입처
K-신학의 인큐베이터 역할 (마을교회, 사회적 기업 교육 등)
교단 구조
관료적 규제 기관
풀뿌리 혁신을 위한 자원 플랫폼 (대형교회 재원 재분배, 네트워크 구축)
지역 교회 리더십
유일한 권위자
섬기는 '촉진자' (연약함, 협력, 경청의 영성 회복)
이 길은 분명 힘들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길이지만, 바로 이 십자가의 여정 속에 21세기 한국 교회의 진정한 부활과 새로운 생명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