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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편한 세상, 그래도 함께 살아야 할까요?

돌봄 마을 돌봄 교회

by 마을꼰대 2025. 5. 2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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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편한 세상, 그래도 함께 살아야 할까요?1. 요즘 사람들은 왜 혼자가 편하다고 느낄까요?

 

https://youtu.be/U7iE95ST6fg?si=c_HIQnLJEAbIJibe

 

 

 

요즘 우리 사회는 '나 혼자 산다'는 말이 자연스러워졌어요. 혼자 사는 삶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1인용 상품 판매도 계속 늘고 있죠 . 이런 모습은 우리가 '혼삶'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
왜 이렇게 혼자가 편하다고 느끼게 됐을까요? 우리 사회가 아주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이루면서 경쟁이 정말 심해졌기 때문이에요 . 끝없는 경쟁 속에서 많은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커졌죠 .
특히 젊은 세대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번아웃 상태를 느끼기도 해요 . 가정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청년들도 많다고 해요 . 이렇게 사회적인 피로감과 관계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혼자 있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아요.
2. 옛날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까요? 지금은 왜 힘들까요?

예전 농촌 사회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게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 길에서 넘어져도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고, 부모가 일터에 나가 없더라도 이웃이 밥을 챙겨주곤 했죠 . 대가족 제도 아래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등 많은 사람이 함께 아이를 돌봤어요 . 육아가 가족 구성원 전체의 공동 몫이었던 거죠.
하지만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웃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되었어요 .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도시에서 살면서 온전히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 대가족은 핵가족이 되었고, 이제는 핵개인 시대가 되면서 돌봄과 관계망이 많이 무너졌어요 .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이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되면서 양육의 어려움이 커졌어요 .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넓은 도시에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힘들다고 이야기해요 . 이렇게 돌봄과 관계망이 무너지면서 출산과 양육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죠 .
3. 사회적 고립, 얼마나 심각한 문제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고립이에요 . 많은 사람이 근대 사회의 중심이었던 핵가족마저 해체되면서 이제는 핵개인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 가정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도 해체되면서 사람들이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관계망이 무너지고 있죠 .
이런 사회적 고립은 아주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어요 . 예전에는 어르신들의 가장 큰 걱정이 암이나 치매였지만 , 최근에는 고독사라는 새로운 공포가 등장했어요 . 우리나라는 특히 남성의 경우 50대부터 고독사가 시작되기도 한대요 .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슬픈 현실이에요.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핵심 문제도 바로 핵개인화로 인한 고립에서 온다고 볼 수 있어요 . 이제 돌봄은 여성이나 가족 단위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요 . 고립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돌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죠.
4. 돌봄 민주주의, 마을 공동체가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사회 전체가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국가 돌봄이나 시장 돌봄에는 한계가 있어요 . 국가가 모든 것을 다 돌봐주기도 어렵고, 시장을 통해 돌봄을 받으려면 비용 문제가 생기기도 하죠 . 그렇다면 누가 돌봄을 책임져야 할까요?
여기서 돌봄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해요 . 돌봄 민주주의는 국가나 시장의 한계를 넘어 마을과 공동체가 돌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 마을을 하나의 살아있는 생태계로 보는 거죠 . 생태계처럼 마을은 고립된 곳이 아니라 관계와 돌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
돌봄 민주주의는 돌봄의 사회학, 돌봄의 민주주의를 넘어 돌봄 민주 국가까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 이제는 여성이나 가족에게만 돌봄을 떠넘기는 대신, 사회가 참여하고 특히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돌봄을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는 거죠 . 마을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어요.
5. 공동체 생활, 정말 행복해지는 길일까요?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요 . 바로 외로움이죠 . 인간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해요 . 서로 의지하고 돌보면서 살아야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죠 .
하버드대학교에서 무려 79년 동안 7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가 있어요 . 이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대요 . 행복해지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최고의 요소는 바로 좋은 관계라는 것이 밝혀졌죠 . 관계를 버리고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
물론 공동체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수 있어요 . 하지만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돌보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거예요 . 함께 사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
6. 마을 공동체, 어떤 모습일까요?

공동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둘 이상만 모여 살아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 꼭 거창한 마을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함께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공동체라고 볼 수 있죠 . 완전히 단절되기보다 조금이라도 연결되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들이 있어요 . 부천세롬 교회나 밝은누리, 은혜 공동체 같은 곳들은 한국에서 잘 알려진 공동체 사례들이죠 . 이런 공동체들은 단순히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성경 공부나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하면서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요 .
잘 운영되는 공동체들은 열려 있다는 특징이 있어요 . 외부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가치관을 함께 배우고 연습하면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죠 . 폐쇄적인 공동체보다 열려 있는 공동체가 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어요 .
7. 공동체 생활,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곳에는 당연히 다툼이나 갈등이 생길 수 있어요 . 가족끼리 살아도 싸우는 것처럼, 공동체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 갈등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현실과 맞지 않죠 .
중요한 것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화해해 나가는지가 중요하죠 .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공동체 생활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을 수 있어요 . 예를 들어, 부동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문제 같은 것들이죠 . 개인의 소유나 자본주의적인 부분들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 완전히 모든 것을 다 내놓고 함께하는 공동체도 있지만 , 공유 주택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존중하면서 함께하는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
8. 도시에서도 공동체 생활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예전 시골 마을과는 환경이 많이 다르죠 . 하지만 도시 환경에 맞는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요 . 도시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답니다.
예를 들어, 공유 주택 같은 형태가 있어요 . 겉보기에는 일반 빌라 같지만, 몇 가구나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용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 교류하는 곳이에요 . 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 같은 것도 도시형 공동체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함께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씩 점진적으로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지는 자세가 중요해요 .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다 보면 외로움이 줄고 서로 의지하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 그러면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살아볼까 하는 용기도 생길 거예요 .
9. 저출생 문제,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어요 . 이 속담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고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살아남고 진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비결이 바로 사회적 출산공동 육아라고 해요 .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출산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 혼자서 아이를 키우지 않고 마을 전체가 함께 돌봤다는 거죠 .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선생님은 이것을 사회적 자궁이라고 설명해요 .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 사회적 자궁인 공동체 안에서 키워진다는 거예요 . 사회적 출산과 공동 육아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하나의 사회적 자궁 역할을 했다는 거죠 .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사회적 자궁이 무너졌다는 거예요 . 사회적 자궁이 복원되지 않는 한, 저출생 문제는 국가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해요 . 마을 공동체가 사회적 자궁의 역할을 되찾아야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일이 다시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
10.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성경 창세기에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나와요 . 이 말씀은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뜻을 넘어, 생명과 돌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 하지만 인간이 공동체의 것을 사적으로 소유하려 하면서 죄악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
지금 우리 사회의 저출생, 고독사, 자살 문제 등 심각한 문제들은 공동체의 것을 사유화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요 . 나만 잘 살고 많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이 관계를 무너뜨리고 고립을 심화시키는 것이죠 .
이런 상황에서 종교, 특히 교회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 교회가 마을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돌봄을 실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죠 . 한국 교회가 생명과 돌봄의 사회적 자궁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 시대의 소명을 따라 공동체적 돌봄을 실천하는 방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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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국재일의 매거진B '2024인구론' 이원돈 목사, 조현기자

자, 국제의 매어진 비 연속대담 2024 인구론. 이번 주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시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저출생 현실을 다각도로 조명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인데요.

앞서네 번의 대담을 통해서 돈만이 완벽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출산과 양육을 가능케 하는 복지 시스템과 제도도 반드시 필요하고 가사노동의 가치도 인정받아야겠죠. 자, 그렇다면 종교는이 생존과 번식이 힘든 척박한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든 사회 환경에서 어떤 의미 있는 역할 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눠 볼 텐데.

자, 나 혼자가 제일 편해.이 혼자 사는 삶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1인용 상품들이 불티하게 팔리는 혼삼매 시대. 이런 혼삼매 시대가이 대세가 되어 가는 세상에 모여서 살자. 오히려 공동체로 눈을 돌리시는 분들을 만나봅니다.

교회를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서 돌본 마음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분이세요. 마을 활동과 부천세롬 교회 이원 목사. 각자 도생의 시대 답은 공동체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저자 마을 입문가인 한결의 조현 기자.이 두 분 모시고 혼삼의 시대에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저출생 시대 진정한 종교와 교회 역할까지 함께 모색해 보죠.

두 분 잘해 모셨습니다. 두 분 안녕하세요. 네.

반습니다. 먼저 어 두 분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은데 마이크를 좀 가까이 드시고 우리 목사님부터 먼저 해 주시죠. 네.

네. 아 저는 그 부천 약도동에서 마을 목회를 하고 있는 새롬교회 이원돈 목사라고 합니다. 네.에 에 코로나 이전에는 주로 마을에 학습 복지 문화 생태계를 형성하면서 어 약대동 마을 공동체를 세우는데 주력을 했다면 이제 코로나 이후에는 돌봄 마을과 돌봄 교회를 세우면서 마을의 마당을 넓혀 가는 일에 주력을 하고 있는 마을 목회자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자, 이번에는 우리 조현 기자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예, 저는 신문사에서 33년을 근무했고요. 33년 중에 2분은 종교 전문 기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말공동체에 대한 탐사기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네. 2024 인구로 마지막 시간입니다.이 그동안 대담을 통해서 저출생의 원인을 수도권 집중, 또 부동산 가격 상승, 높은 교육열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에서 저희가 좀 찾아볼 수 있었는데 명확한 것은 뭐냐면 지금 청년층이 청년 세대가 가정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점이거든요. 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을까?이 근본적인 질문부터 먼저 드려봅니다.

먼저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우리의 오늘의 사회는 압축적인 근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직급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한국 사회를 성공으로 이끌어 왔지만 이제 압축적 근대화를 통한 그 후기의 모습은 압축적인 붕괴로 지금 상당히 저출산이라든지 가족 해체라든지 핵인이라든지 어려운 문제들을 지금 동시에 같이 낳고 습니다. 특별히 젊은 세대들이 압축 성장을 통한이 경쟁 사회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또 공동체에 대한 회피증들을 지금 느끼고 있어서 사회적으로는 저출상과 같은 탈공동체 현상을 가지고 오고 있고 교회적으로는 가나안 성도와 같은 탈 교회 현상이 교회 현상에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네. 기자님께서 어떻게 보셨습니까? 요즘 청년들이 예.

그런데 인구 감소가 실은 이제 한국이 너무 심각해서 그러지 전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가 지금 보편화 돼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예전에 이제 우리가 사회 시간에 보면은 그 멜더스 이론 이런 것들은 이제들은 기억이 나실 텐데 식량이나 이런 재화들은 산술 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구가 너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빨리 증가한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토마스 호킨스 같은 세계적인 이런 학자들도 인구가 너무나 급속하게 증가해서 우주 끝까지 인구의로 우주 끝까지 다 포화 상태가 돼 버릴 것이다고 이렇게 예언을 했는데 그 세계적인 학자 예언도 지금 전혀 지금 40년 만에 전혀 들어맞지가 않는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이제 인구를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는 추세가 지금 가속화됐기 때문에 방금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지만은 어떤 우리의 물질 문명이 급속화되는 문명사적인 어떤 위기 차원에서이 문제를 좀 다뤄야 되지 않는가 저는 이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문명과 급속도로 광문명과 이런 급속도로 이렇게 발전하면서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필요해지고 얼마나 이제 먼이 됐는지 더 이상 출산을 하고 돌보고 이런 것에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는 상태가 된 어떤 문명적인 차원에서이 문제를 다뤄봐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문명 쪽으로 한번 접근해 보죠. 우리가 농업 농경 사회였다가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제 도시 사회로 좀 변화했죠. 1990년대부터 시작해서 21세기까지 좀 짚어봤을 때 그러면서 여성들의 사진도 좀 많아졌고요.

가족의 형태도 뭐 대가족에서 소가족 근데 핵가족까지 나타나면서 많이 변화들이 나타났습니다.이 대가족 사회에서는 육가가 이제 공동의 몫시였잖아요. 근데 점점 가족의 형태가 변해면서 육가 여건이 점점 어려워진 건 맞는 거 같아요. 목사님이 부분은 어떻게 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까? 지금 그 전반적으로 이제 우리 목회 현장이나 마을 현장에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고립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적 고립. 예. 많은 사람들이 근대 사회는 핵 가족이 이제 중심이 되었는데 그 근대를 이루었던 핵 가족도 지금 해체가 되면서 핵 개인으로 가잖아요.

예. 그리고 가정 공동체도 해체되고 마을 공동체도 지금 해체되고 있다라는 거죠. 그거를 한 더 생각해 보면은 사람들이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관계과 돌고 돌본망이 붕괴 해체되고 있다라는 걸 의미합니다.

음. 음.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이 돌본망과 관계 해체가 되면서 유가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핵적 단위로 지금 돌아가고 있는데 그 단위에서는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된 거죠.

음.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미 이러한 출산과 양육에 대한 그 상상력이 젊은이들이이 핵대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그런 상상력을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 기자님께서는 문명에 대해서 언급하 주셨는데 문명사에 따라서 역사적 사실로 접근해 봤을 때는 어떤 다른 점이 있습니까? 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저만 해도 농촌원에서 잘하고 컸는데 대부분의 아마 대한민국 사람들의 예전에 45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의 90%가 농촌 출신이거든요.

그러면 농촌 출신이면은 대가족 하에서 잘 꼭 대가족이 아니다 하더라도 마을에 나가면은 전부 다 아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길에서 넘어지거나 이렇게 다쳐도 누군가가 일으켜 세워주고 돌봐주고 어 설사 무슨 일을 당해도 어 이제 엄 부모가 어디 일터에 나가고 없다 하더라도 굶고 있으면은 집에 와서 찬밥이라도 한글은 먹겨 주고 때겨 주고 이런 이제 공동체적 돌보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도시와율이 한국이 제일 높습니다. 지금 90% 이상이 지금 도시아에 사는데 한국이 굉장히 도시도 높은데 그러면 도시의 삶이라는 것은 온전히 모든 그러니까 이웃과 안전히 단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얘를 낳고 돌본다는 것이 온전히 내 혼자의 모든 것이 가중되기 때문에 그만큼 예전에는 나면은 부모가 봐주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봐주든 고모가 봐주든 같이 공동의 책임이었고 공동에 이렇게 분담이 됐는데 지금은 온전히 독박이다.

독박 쓰고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다.음 저도 얘를 키워봤지만은 정말 그 넓은 도시에서 우리 예 맡길 사람이 없거든요. 음 어떻게 맡길 꽃이 없거든요. 온전히 내 책임으로 돌아온다는이 도시의 삶 어떤 문명적으로 이런 고립된 삶에서 느끼는 압박감이라는 것이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야 나는 그것을 도저히 내 혼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어 나 혼자 그걸 어떻게 하겠어? 내 한 몸 가누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돼 버린 거죠. 사실 저도 어렸을 때 보면 아파트에 살긴 했지만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그 또 어머니들이 저를 봐주기도 하고 또 친구들이 저희 집에서 놀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뭐 이웃 근처에 있는 또 친척들께서도 봐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 이런 것들이 완전히 무너졌잖아요.

목사님 어떠세요? 공동체 이렇게 사역을 하다 보면 느끼는 점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사회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고립인데요.그 어르신들이 예를 들면은 옛날에 이제 공포는 암과 치매 아니했어요. 네. 암과 치매가 이제 가장 그 어르신되면 이제 공포인데 최근에는 이제 고독사라는게 새로운게 등장을 합니다.

그렇죠. 고독사. 이게 고독사는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는 건데 우리나라는 남성들은 50 60부터 고립사 고독사가 시작이 된다는 거죠.

오, 그래서 지금 음,이 사회적인 양극화 불평등이라는 것이 최근에는 고립이 되는 모든 지금 사회적인 문제 핵 핵심은 사람이 핵 개인으로까지 공동체가 해체가 됐고 그 핵인으로 핵가족을 넘어 핵 개인으로 해체되면서 이웃과 관계과 돌본망이 붕괴되면서 고립되는 거. 음. 여기서 모든 이제 공동체 문제, 사회적인 문제, 개인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그 목사님 우리 사회가 유독 그 모성애를 강조하고 또 강요하다 보니까 여성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좀 더 크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게 됐는데 어떻습니까? 여성들에게 모든 거를 지금 이제 사회가 돌봄을 맡겼거든요. 그러니까이 돌봄도 여성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도 돌봄이 안 된다라는 거예요. 음.

음.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면 여성과 가족 단위로 돌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될 시대로 가고 있는데 음 우리가 계속 아직도 여성들이 돌봐야 된다. 가족이 돌봐야 된다라는 걸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제는 여성과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을 져야 된다.

돌봐야 된다는 거죠. 국가 돌보도 한계가 왔고 이제 국가가 돌보지 않으면은 그 틈세로 시장들이 나서거든요. 시장 돌봄도 한계가 있고 그러기 때문에 국가 돌봄도 실패하고 시장 돌봄도 실패하지만 그럼 누가 돌보냐 가족도 힘들면 그러기 때문에 마을이 돌봐야 된다.

공동체가 돌봐야 된다라는 돌본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그 단계를을 돌봄 민주주의돌봄의 사회학 돌범의 민주주의 심지어는 돌범 민주 국가까지 지금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이러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좀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자꾸 여성들 가족들한테 돌보는 거를 떠넘기는게 독박 씌우는게 아니라 사회가 참여를 해야 되고 사회 중에서도 국가나 시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마을 단위에이 돌봄을 이제 얘기할 때가 됐다.

공동체가 책임을지는 그 얘기가 오늘 우리들이 나눠야 될 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좋습니다. 그다음에 좀 다음으로 짚어봐야 될게 청년들의 시선도 함께 짚어보고 싶거든요.

물론 이제 나중에 공동체에게도 짚어 보겠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핵가족화로 육관은 온전히 이제 부부의 몫이 되었죠. 그런 사회에서 청년들한테는 어 교육 그다음에 노동 시간이 증대되고 또 극심한이 경쟁으로 인해서 이미 결혼과 출산도 하기 어려운 번웃 상태가 되어 있거든요. 제 주변 뭐 지인들만 봐도 이런 상태에 노인 친구들이 많은데 그렇다 보니까 청년들은 갈수록 개별화되고 혼자가 편하다.

혼자 사는게 즐겁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 혼자가 근데 뭐 외롭긴 해도 우리가 아까 말한 뭐 고독사를 얘기긴 했지만 아직 청년들에게는 외롭지만 그래도 괜찮거든요.

나 혼자만 좀 편하면 되니까.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하는 뭐 청년들이나 뭐 지인분들은 많이 없으십니까? 기자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죠. 당연히 요즘 추세가 트렌드가 그렇죠.

예전에 이제 저희들이 저도 이제 7배 사회에서 컸는데 대가족 사이에서 이제 많은 형제관들 사이에서 살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기에 한 방안에서 이제 여러 형제관들이 이제 어려운 시대에 이제 살다 보면은 서로 생존을 위해서 또 뭐 밥안 그릇 뭐 맛있는 거 하나 더 먹으려고 그 부족한 가운데서도 눈치를 보면서 이제 관계를 하는 연습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조금씩 조금씩 원든 원치 않든 우리는 다양한 관계을 어렸을 때부터 생리적으로 습득하게 되는데 이제 그 이후에 요즘 2, 30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혼자 자라거나 둘이 자라하거나 서위 자라거나 예전에는 우리 한 방에 여러 명이 같이 자았는데 요즘에는 각방 대분이 각방을 쓰거든요. 형제관이 뭐 한 둘이 셋이 되더라도 이제 각방을 많이 쓰기 때문에 네 타인하고 이렇게 눈을 박가면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법을 애초에 익히질 않아요.

그러니까 혼자 사는 삶이 혹신 익숙하고 그리고 이제 예전보다도 더 사회가 물질 운명이 발전하다 보니까 더 고도화되다 보니까 생존하기 위해서 싸워야 될 또 익혀야 될 훈련하고 교육받아야 될 것은 더욱더 많고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까 몸도 필요한데 뭐 관계까지 신경 써? 아 나 거기까지는 신경 못 써. 관계에도 신경 못 써. 결혼에도 신경 못 써.

출산에도 신경 못 써. 거기까지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 맞아요.

나는 그대로 혼자는 편해. 이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요즘 이제 보편적인 굉장히 그런 것이 많아졌는데 주관적인 판단도 나이 때에 따라서 또 달라지거든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 왕성했을 때는 그러지만은 또 자기가 온전히 보호를 돌봄을 받아야 될 나이가 되면은 또 전혀 또 생각이 또 달라지거든요.

아, 내가 2, 30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670이 되고 보니까 내가 그때 나가면은 뭐든지 나 여행도 할 수 있고 뭐든지 내 힘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혼자 사는 것도 했지만은 지금은 원정이 다른 사람 타인의 도움을 받고 의지해야 될 나이에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 내가 그때 왜 어 나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고 살았지 이렇게 후회하시는 것도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우린 다르게 살기로는 책을 내고 나서 네네.

서울시창 앞에서 5회 강의를 했는데 이제 금방 마감이 됐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저도 기대를 안고 이제 강현장에 갔는데 거기에 강현장에 오신 80%가 노인들이신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솔직히 친절하게 얘기해야 되는데 이제 제가 직설적으로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니이 나이 때까지 여때 뭐 하시고 인지사 이렇게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그러니까 이제 웃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공동체도 국가에서 돈을 지원해서 하는 사회 복지 시설이나 국가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가정의 확대판이다. 그러니까 가정에서도 자기 부모 하나 모시지는 것도 힘들어하는 세상에서 이제 공동체도 그 가정의 확대판인데 거기도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되고 누군가는 밥을 해야 되고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되는데 거기에 열명이 전부 다 노인들만 가지고 온전히 다 돌봄만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으면은 그 공동체가 유지가 되겠느냐 그러니까 자기가 좀 젊은 시절에 자기도 육가를 하거나 답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남을 돌보는 사람만 만이 그런 혜택을 누릴 수가 있는데 그건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가 60대가 돼서야 아 내가 이제 돌봄을 받아야겠어 받아야 될 나이가 되다 보니까 나를 돌줄 때 어디가 없나 하고 지금 왔잖아요.

그러면은 그게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하니까 그분들 또 다 웃더라고요. 현실적으로 그렇게 어렵거든요.그러니까 나이 때에 따라서 그런 생각도 다 변하게 되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능히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고 다 그럴 것 같지만은 또 나이 때에 따라서 달라지거든요. 야, 상황이 달라지거든요.

지금 청년들이 꼭이 기자님 말씀을 들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약간 반성하게 됐는데. 아, 우리 목사님께서도 우리 기자님만큼 많은 분들을 접하고 또 이제 얘기를 나누실 텐데 이런 청년들 많습니까? 주변에 청년들이 공동체의 필요성은 인정을 하는데 네 공동체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거 아 같이 생활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 그 이유는 1990년대 우리나라가 이제 신자유주의 물결이 각제도생 물결이 들어오면서 그때부터는 공동체가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 있는 분들은 이제 공동체의 경험이 없는 건데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공동체가 해체돼서 모든 고독사나 사회적인 문제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거든요.이 양극화 불평등 고독사 이런 걸 해결하려면 다시 공동체가 부활해야 되는데 거기에 있어서 필요성은 조금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거예요. 음. 음.

그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가지고 그리고 학교나 이런 그동안 기존 공동체들이 이걸 잘 가르키지를 못해요. 거기도 다 해체돼 있기 때문에 교회나 시민 사회나 공동체적인 것을 유지한 곳만이이 문제를 지금 접근할 수 있는데 여기에 지금 상당한 우리 사회가 어려움이 있는 거죠. 전반적으로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럼 이제 공동체로 좀 눈을 돌려보죠. 혼삶의 시대.이 이 혼자가 익숙한이 시대에서 두 분께서는 공동체로 눈을 돌리셨어요.

어, 전 좀 신기했는데 조용 기자님께서는 더불어서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이 자본만을 쫓는 삶에서 해방될뿐만 아니라 행복해지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예. 저도 이제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 똑같이 살아온 사람이었고 이제 직장 생활을 저도 33년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직장 생활 하고 하다 보면은 너무 인간들 지겹잖아요. 힘들고 관계가 어느 조직인들, 어느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갈등이 없는 곳이 없고 어 또 피곤함이 없는 것이 없고 그래서 저도 막 어디 혼자 숨어 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거든요. 네.

그런데 저도 그런 제 자신을 이렇게 돌아보면은 그 혼자 가서 숨어 버려서 그 행복해지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결정적으로 외로움이라는 문제가 절대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외로움이라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은 음 절대로 혼자 살 수는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구나.

우리는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고 사람들간에 어떻게 피곤한데 같이 살 수 있어. 저도 이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는데 직접 공동체를 이렇게 이제 다녀 보면서 예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또 연습을 하고 그렇게 갈등 상태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고 그 끊임없이 훈련을 하고 연습을 하고 다른 모델 케이스도 보고 또 본받기도 하고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혼자 힘으로 도저히 회견해 나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야, 온전히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허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은 같이 살아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돌보면서 정말 그래야만이 온전히 행복해질 수가 있구나.

저는 이제 공동체를 다녀보면서 정말 진정으로 그것이 행복한 사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것에 다 두려워해요. 저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는 것은 우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는 길이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공동체적 삶을 많이 이제 탐구를 하고 또 소개하고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살 수 없다.이 부분에 대해서 저도 명확하게 공감하거든요. 그런데 마을과 공동체이 마을 공동체는 좀 생수한 분들도 있을 거예요. 저한테도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오는데이 공동체를 어떻게 좀 정의할 수 있을까요? 마을 공동체라는 걸.

예. 예. 그러니까 그 저는 이제 둘 이상만 살면 다 공동체거든요.

부천의 약대동처럼 그런 마을로 이제 마을에서 사람들끼리 비비고 벗고 같이 먹고 놀고 이렇게 하는 공동 챔프뿐만 아니고 우리가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모여서 식사하고 교재하고 나누고 그러니까 이런 것도 저는 다 공동체에 속한다고 그러니까 완전히 단절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연결을 추구해 가는 것 그러니까 그런 공동체 범위를 무한 확산시켜야 되 그렇게 가야 된다고 봅니다. 아, 그니까 이것만이 공동체 마을이 아니라 어, 공동체 마을을 사역하는 분들도 이제 공동체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밥 먹는 것도 공동체 어, 다양하군요. 예.

자, 그럼 목사님께도 질문한 들립니다.이 공동체를 직접 실천하고 계신데 돌봄 교회이 돌봄 마을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지 좀 소개해 주시죠. 우리 이제 돌봄 교회, 돌봄 마을 이제라고 조금 더 구체적인 그 이제 마을을 얘기하면은 저는 이제 마을을 하나의 생태계라고 이제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마을이 하나의 생태계다.

생태계다. 생태계라고 하는 것은 고립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짜여 있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마을은 유기체고 존재 자체가 관계 망으로 짜져 있고 돌보 망으로 짜여 있고 관계과 돌보 망을 통해서 생명망을 짜는 거다.

실은 우리나라가 뭐 출산율 출산율만 얘기를 하지만은 얘기를 얘기들을 나눴다 하더라도 누군가 돌보지 않고 방치된 상태에서 얘들이 또 불량 소년이 되거나은 고립 청년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만운고립라 실은 돌보에 더 취약한과 약대동 같은 데서 목사님 같은 분들이 들어가서 이것은 국가에서 예산을 드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정말 소수의 헌신자들이 아니면은 이게 해낼 수 없는 7, 80년대는 그런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이 나라가 그런 어려움을 해울 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그냥 골목께서 담배나 피고 무슨 본드나 마시고 이럴 수 있는 애들을 반가워 학교에서 떡볶이 해서 먹이고 공부 가르치고이 같이 돌보면서 애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이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너무 우동네 가난한 동네기 때문에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이고 그러니까 공동체가 잘 형이 안 되고 그니까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문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하고 밑빠진 독에 물붓이고 정말 힘든 세월이 있겠지만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말 그들이 한 시대에 공동체역 돌봄으로서 완전히 방치될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을 이런 곳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 사회 이론으로 지금 이제 성장할 수가 있었던 거죠. 네.

그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게 이제 노아의 방주 같은 곳이고 약대 같은 방주 같은 곳이고 이런 곳이 우리가 너무 거대한 꿈을 갖고 뭐 전 우리나라를 바꾸자, 세계를 바꾸자 이런 것은 너무 어떻게 보면 제가 보기에는 좀 허황되고 방주가 희망을 줄 수 있는 방주들이 한 곳이라도 또 다섯 곳이라도 열 곳이라도 있어 주면은 아 저곳을 보고 희망을 삼고 우리도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우리가 조금 가난하고 먹고 살기 어렵다 하더라도 저렇게 공동체적 마을 네트워이 잘 되는 마을에 가면은 나는 내 혼자 아이를 낳고기를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조금 나도 조금 그 마을에 도움도 받고 하면서 나도 우리 애를 기울 수기를 수가 있겠구나 이런 희망을 갈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방주들이 많이 생겨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맞.

또 이제 목회자시니까 또 이런 질문도 들려보고 싶어요. 한국 교회가 위기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이런 변화의 몸짓이이 한국 교회의 공동체성 또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까요?이 이 공동체 마을 이런 자체가 한국 교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여쭤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 제가 어제 여기 그 물만 그 공동체에서 이제 그 게스트룸에서 잠을 자서 오늘 아침에 이제 식사를 할 때 일곱분의 이제 지역에 분들이 이제 모여 가지고 이제 여기 오늘 이렇게 CBS에서 이게 좋은 프로그램 해서 음 그런 맛보 얘기들을 했는데 이미 공동체들이 이렇게 형성된 데들이 있어요.

어 그래요? 그리 그리고 올해 3월인가에 국회에서 통합돌보 지원법 지원법이 통과가 됐어요. 음. 음.

그래서 1년 반 후에는 통합 돌봄을 돌봄 마을을 만들면 그거를 지원하는 법이 통과가 돼서 이게 이제 굉장히 중요한 지금 이제 앞으로 교회의 이제 방향타로 이제 자리 매임을 할 것 같은데 돌봄 마을이나 돌봄 교회라는 것이 앞으로 저출산의 문제, 고령화 문제, 고독사, 자살례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지금 없는 거거든요. [음악] 음한마을공라는 모델을 만들고 이것이 한 도시에서 한 다섯 개 정도만 만들어지지면 한 도시가 양국화 저출산의 문제 그다음에 불평등의 문제들을 마을 단위로 해결하는 그래서 돌봄의 민주화가 되고 말을 단위로 해결이 되면 그 문제들이 해결이 되는 것을 사람들이 이제 피부에 느끼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 저런 공동체가 있구나. 저런 공동체가 나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구나라는 그러한 이제 느낌을 봤잖아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느낀 거는 우리가 우리는 이제 아까 말했던 센터나 이제 도서관 그다음에 어르신 급식 이제 이런 이제 프로그램들 그 관계을 지금 갖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네. 그 개체로만 있는게 아니라 지옥 사회와 이제 연결이 되고 서로 이제 물론 이제 교회 산하가 있기 때문에 이제 교회 밖에서 뭐 어린이집 지화동 센터도 도서관은 그렇게 있지만은 요거 신신마라고 하는 신나고 신나는 어르신 마을이나 음음 그다음에 꽃비 심야 식당 같은 경우는 그곳이 이제 교회의 내부에 들어와 있어요.

교회 받기. 그래서이 마당을 형성한다라는 것은 교회와 마을의 접촉이나 경계선에서 마당이 생기는 거. 교회와 마을을 연결하는 그 접촉전과 경계선에서 창조적인 마 그 마당이 청송이 돼요.

음. 그런 마당이 형성됐는데 우리 교회는 이제 그런데 교육이라든지 복지 쪽에 적을 했는데 시 일방적으로지 지원하라는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거를 한 해나 두에서 넓히어서 그거를 매칭 펀 하면 하고 세 번 할 수 있고 수리도 하고 마을 장례식까지도 할 수 있다라는 거죠. 음.

근데 오늘 여기 물권이 오니까 물망골은 이미 열개의 공유 주택을 갖고 있더라고요. 어, 그래요? 그래서 저보로 한번 오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이런 얘기들이 그 지금 주택 문제, 육가 문제, 교육 문제라는 것만 해결되면은 젊은이들이 출산이 가능하거든요.

이게 마을 단위에서 음 불가능하지 않다라는 오, 그렇군요. 그게 이제 마당의 개념이에요. 네.

그 해결하지 못하고 또 해결하기 좀 힘들었던 사회 문제들이이 마을이 또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이잖아요.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죠.

네. 근데 또 기자님께서는이 마을과 공동체를 탐사 취재하셨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공동체까지 취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이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좀거해서 보신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이 사람들이네. 공동체로 이제 살아간다 그러면은 사람들이 야 내가 혼자 살기도 힘들고 둘이 살기도 이렇게 힘든데 가족끼리 가족끼리 살기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공동체 어 공동체로 어떻게 살아 이렇게 어떻게 피곤하게 저렇게 같이 살 수가 있지 이런데 그들을 딱 보면은 그들이하고 우리하고 다르지가 않아요.

대부분은 잘되는 공동체들은 어떤 가치관 지향이 비슷하게 그냥 먹고 마시고 이런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교회 공동체라면 성욕 공부도 하고 또 이제 다른 공동체들 또 인문학적 공부도 많이 하면서 가치관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물질주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서로 나눔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떤 또 경청 공감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굉장히 그런 가치관을 같이 공유하는 하는 삶에 대해서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은 그런데 있어서 굉장히 나름대로 또 훈련이 되다 보면은 살아가는데 우리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저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살아? 피곤하게 어떻게 같이 살아? 이제 하지만은 그들은 그 안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계속 훈련하고 연습하고 또 같이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같이 공부해 가기 때문에 훨씬 더 그렇게 잘해 가는 공동체일수록 정말 잘 되어가더라고요. 어, 접하셨던 공동체 중에서 좀 소개하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어떤 공동체가 있습니까? 예. 그러니까 제가 이제 우린 나르게 살기로 했다에 이제 소개한 공동체들도 이제 한국에서도 잘되는 공동체들, 기독교 공동체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저희가 하는데 보면 이제 밝은 누이라든가 은혜 공동체들이 전부다 이제이 기독교 공동체들인데 그런 공동체들도 그러니까 예전에 보면은 약간 이제 공동체면은 조금 예전에는 좀 그 일본의 뭐 옴 진리교나 이런 것도 공동체였기 때문에 공동체면 약간 사실을 보고 보기도 해요. 너무 폐쇄적인 공동체들이 이제 많았기 때문에 근데 요즘에 이제 잘된 공동체들은 물론 약대동 공동체들 약대동도 여기 새로운 교회도 그러지만은 벌써 돌봄을 다른 교회들과도 협력하면서 이런 것을 많이 해 가시잖아요. 그러니까 발언들이나 은행 공동체 같은 경우도 잘되는 공동체들 보면은 그니까 폐쇄적으로 가면 이상하게 가고 그들도 굉장히 교류를 하고 열려 있고 예전에 우리가 이제 요즘은 큰 교회들은 너무 잘되기 때문에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우리 그렇지 않아도 배부르고 잘 되는데 근데 그 너무 조금 힘이 없고 숫자가 적고 그런 교회들은 마을에 개방적이지 않으면 혼자 살아갈 수 없거든요. 말하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지. 이 굉장히 굉장히 공동체적으로 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공동체적 삶으로 이렇게 되어갈 수밖에 없는데 잘되는 은행 공동체나 밝은 공동체는 자기들끼리 폐쇄성을 가져도 잘 될 것 같은데도 너무 열려 있고 어 그러기 때문에 제가 야 이런 공동체들은이 세상에 참 빚이 된다. 그러니까 왜냐면은 자기들끼리만 잘되면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열려 있어야 우리들이 가서 보고 야 우리들 또 저렇게 살면 되겠네.

은혜 공동체나 밝은 놀이 공동체처럼 외부하고도 교류도 많이 하고 일반적인 성역 공부뿐만 아니고 임문학 공부까지 보편적으로 굉장히 사회 보편 시민으로서의 공부도 많이 하면서 열려 있는 이런 공동체들을 추가하다 보니까 일반인들도 접근하기가 아주 쉬운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공동체들이 이제 보통 사람들도 특수한 사람들만이 공동체 살아간다는 어떤 막한 편견에서 아 나도 살아볼 수 있겠네 그러면서 그 사람들 또 그 거기 교류할 수 있는 장들 또 그들이 충분히 제공하고 그러니까 그런 공동체들이 지금 이제 기독교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게 굉장히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부천세 새로운 교회 또 밝은 놀이 공동체 은혜 공동체이 세 곳을 언급해 주셨는데이 세 곳에 그럼 최대 장점은 열려 있다.

정의하면 될까요? 열려 있어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죠. 그렇죠.그러니까 교회 안에만 완전히 갇혀 있는게 아니죠. 그 교회 안에만 폐쇄적인 그런 그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 폭넓게 꼭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그래야 싫은 이렇게 교류를 해야 나중에 신자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 완전히 폐쇄적으로 이렇게 돼 가지고는 그게 뭐 이게 다친 교회가 조금 이제 그런게 문제지 않습니까? 네. 네.

너무 그니까 이런 공동 마을공동 마을 밖으로 이렇게 나오는게 굉장히 저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 개점이 있다면 어떤 점들이 있을까요? 예.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우린 다르게 살기로 이렇게 책 내고 나서 북콘서트를 하면 배여번 했는데 대부분 마지막에는 갈등이 생기면 어떡해요? 뭐 이렇게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그런 질문들이 많고 아마 목사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겁니다. 저는 인간 살아가는 사에서 다툼이 없고 차이가 없고 갈등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디나 다 있는데 그런 것이 완벽히 없어야 된다는 것이 낯이식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히틀러는 나고 다른 인간은 전부 다 죽여. 장애인도 죽여버려. 유대인도 죽여버려.

나고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또 인종도 다르면은 다 없애 버려. 우리하고 전부 다 모든 것이 같아야 돼. 이렇게 되면은 너무 패시적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조금 이제 그 열린 사고가 굉장히 이제 필요하고 지금 그게 새로운 교회도 이제 그걸 추구하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갈등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생각해. 그러니까 알아. 그러니까 어디든지 우리가 뭐 둘이 산다고 안 싸우나요? 싸우죠.

공동체로 사나 둘이 사나 싸움도 있고 이런 거는 거예. 혼자 살아도 갈등도 있고 부대낌도 있고 그런데 차이를 어떻게 할 극복하고 어떻게 화해하고 이런게 중요한 것이 전혀 우리는 전혀 달라서 안 돼. 전혀 갈등을 일으켜서 안 돼.

이런 너무 막힌 사고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걸 못 느껴서 그런지 공동체했을 때 생각나는게 좀 부동산이었어요. 아니 이거를 어떻게 공동 소유하지?이 음는쁨 있잖아요.

근데 이걸 다 포기하고 공동체가 갖고 있는 그 힘을 위해서 나누겠다. 이게 솔직히 저는 좀 이해가 되진 않거든요. 우리 조용 기자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예.

미국의 그 기독교 유명한 기독교 공동체인 브로드프 공동체라든가 이제 한국에서도 그 굉장히 오래된 야마귀시 공동체 일본에서 출발한 그런 공동체들은 완전히 무소위 공동체 개인의 제사는 하나도 없이 그러니까 원시 공산 사회가 똑같은 거죠. 실은 예수님 공동체가 이제 원시 공산 사회 그런 공동체인데 전부 다 어 너희들은 다 버리고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이제 그런게 완전 무서히 공동체인데 어떻게 보면은 그건 이제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은 우리가 이제 개인의 욕망을 이제 전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현실 사회에서. 그러니까 지금은 어느 정도 다 완충 이제 절충을 해 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 사람들이 조금 더 발군들이나 이런 데서도 새로운 교회도 그럴 거예요. 더 뭐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내놔야죠.

당연히 약한 사람들을 돌보 좀 어 뭐 김치도 필요하고 쌀도 필요한 사람들서 좀 더 내놓는 이런 자세들 이런 거지. 완전히 가진 것을 전부 다 내놔라. 이런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조금 이제 지금은 잘 맞지 않는 거 같고 그러니까 어느 정도 개인의 소유 자본주의 어느 이런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것을 전부 다 내놓고 함께하는 이제 공동체도 있을 수가 있지만은 네.

이제 그렇지 않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공동체적으로 얼마든지 공유주택이라든가 마을에서 함께할 수 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적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 그렇군요.

또 이제 조영 기자님께서는 전국 많은 곳을 이제 돌아다니면서 취재하셨으니까이 부산에 맞는 공동체를 세운다면 좀 어떤 느낌, 어떤 색깔을 갖고 세우면 좋을까요? 예, 아주 좋은 질문이십니다. 그러니까 그 지금은 이제 부산만 해도 세계적인 대도시이기 때문에 예, 예전처럼 우리 이제 시골에 가면 어떤 목가적인 공동체적 이런 것을 그리고 많이 하는데 이제 도시에서는 그런게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 맞는 공동치적 사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음수같은 곳은 거기도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이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이 공유주택에서 산다 그래요. 그러니까 공유주택이라는게 겉보기에는 그냥 빌라 같은 곳인데 그곳에서 뭐 세 가족,네 가족 아니면은 뭐 독신자들이 선명이 모여서 같이 산다든가 그래도 그러니까 100% 공동체적 삶을 추가하지 않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두 세 번만 식사를 같이 하고 한 번 정도는 같이 우리가 이제 공부 교재를 나누고 한 번 정도는 뭐 무슨 파티를 하고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이제 충분히 해갈 수가 있는 거거든요.음. 네네 아 나는 그런다는 그니까 적어도 도서관에서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만나서 교재하는 독서 모임이라 하더라도 그런 정도라도 참여하는 것이 저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런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확산시켜 보면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은 오후 이렇게 예전에는 사람 만나는게 이렇게 두려웠는데 사람 만나는게 이렇게 좋고 서로 의지되고 힘이 돼.

그 그러면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그러면 혼자 사는 거보다도 같이 살아볼까? 어 그러면서 같이 산다 하더라도 100% 프라이버익숙 있기 때문에 100% 공동체적 삶은 안 되고 프라이버시 삶을 팔을 하고 공동체 삶을 이을 정도로 완충 정도로 이렇게 해볼까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공동체적 삶에 익숙해 가는 이런 자세로 대도시에서 접근하는 것이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두 분께서는이 공동체이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저출생과 초고령화 그다음에 이제 청년들이이 도시로 서울로만 가는 것들을 좀 막을 수 있다. 이렇게 보십니까? 좀 해결책 뭐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다라고 보시는 건지요? 네.

제가 이제 여기 부산 CBS에서 이렇게 특별한 거를 마련해 가지고 조금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설교도 좀 한번 해 봤는데 이제 연습 삼아서 네. 제가 깜짝 놀란게 저희들이 이제 80년대에 이제 마을 운동이나 공동체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얘기했던 것이 아까 그 특히 공동체 유가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이 다 아시죠? 예.

예. 이제 고인류학자 아마 이상이 교수님이었던 거 같은데 그 우랑우탕이라든지 이제 침팬치라든지 이런 영장류랑 결정적인 차이가 영장류 다른 오라운탕이랑 심지들은이 출산할 때 혼자 한다는 거예요. 출산이 다가오면 혼자 가서 음 출산해서 독박 혼자서 키우는 거래.

근데 우리 인류는 그 고인류학자의 얘기에 의하면은 기 우리가 머리가 크잖아요. 두뇌가이기 때문에 회전에서 나온다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돼.

혼자서 날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출산부터 돌봄이 필요하고 그거를 사회적 출산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고력적은 출산 자체가 허모사피 사회적 출산이고 어 두 번째 양육하는 방식도 혼자서 양육하는게 아니라 한 아이를 한 마을에서 키운다는 공동 육가를 사회적 출산하고 공동 육가를 했다는 거죠.

음. 음. 이게 결정적인 인류의 진화와 생전의 성공의 이유라는 거예요.

고인류학자가 사회적 출상과 공동유가 그니까 8, 9, 10년대에 마을을 활동하던 젊은 부모들이나 마을 공동체에서 전부 공동가 운동을 했거든요. 그때는 그렇게 각광을 많이 못 받았어요. 근데 아직도 명맥이 있는데 마을에 이것을 뇌과학자나 고인류학자들이 이게 인류의 생존과 진화의 최고의 성공의 비비결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걸 살려야 돼요. 근데 여기에 대해서 예이 공부를 한 분이 이제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인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자궁 속에서 태어나서 사회적 자궁이라고 하는 자궁에서 키워지는졌다는 거죠. 그게 호모사피스라는 거죠.

다시 말해서 사회적 출산을 하고 공동 육가를 한 다음에 그것이 발전해서 인류는 호모산패스는 그것을 사회적 자궁으로 만들었대요. 사회적 출산 공동가 그거를 공동체를 켰는데 마을 단위로 공동체 전체가 마을 자체를 자궁으로 만들어서 어 그 그것 때문에이 소모사페스가 어마어마한이 인류를 만들어 냈다는 건데 지금 핵심 문제는이 사회적 자궁이 붕괴됐다는 거 그러기 때문에 사회적 자궁을 보건하지 않는 한이 저출산율은 무슨 국가 정책 이런 거 물론 필요하 그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니까 사회적 자국만 먼저 저는 알았는데 이거는 고인류학자, 내과학자까지 사회적 자을 어떻게 만드냐면 사회적 출산, 공동 유가 그리고 마을 단위의 사회 마을 단위가 사회적 자궁의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거죠.

이게 자궁이 없는데 어떻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을 할 수 있느냐는 거죠. 음. 저는 이게 이걸 오늘 꼭 얘기하고 싶었어요.

이걸 지금 해결 이건 신학의 문제고 과학의 문제예요. 예. 예.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하신 말씀인데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도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사람하고 다른 동물하고 결정적인 차이가 있거든요. 우리가 이제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라 하더라도 소나 말이나 이렇게 다른 것들은 태어나서 한 뭐 5분 10분이면은 예전에 보면은 톡 치면은 일어나서 달려가거든요.

그리고 한 1년만 키우면은 고양이도지도 잡고 강아지도 1년만 키우면 도둑이 오면 짓기도 하고 이제 소나 말은 혼자서도 1년만 키우면 꼴을 뜯어 먹고 양도 혼자 돌아다니면서도 풀도 뜯어 먹고 하거든요. 근데 사람은 1년 키워 봐야 1년 길러 봐야 겨우 이제 걸을까 말까 할 정도가 되거든요. 근데 다른 동물들은 1년만 키우면 집 밥벌이를 하기 시작하는데 고양이는지도 잡고 집 밥벌리를 하는데 사람은 10년 키워도 집 밥벌리가 안 되거든요.

요즘은 30년 키워도 견적이 안 나거든요. 그러니까 그 정도가 되니까 사람에게는 너무 그 이렇게 계산으로 하면 계산이 안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 출산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어떤 의무라고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이면 그렇게 해야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걸 했는데 요즘은 이제 선택 사항이 돼 버렸거든요.

선택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계산을 해 보거든요. 계산을 해 보면은 출사는 계산이 안 나오거든요. 다른 것은 계산이 분명히 나오는데 인간은 키워봐야 2, 30년을 켜봐야 환수 회수가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 이렇게 계산을 하니까 이렇게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회적 돌보이 안 되면 공동체적 돌보이 안 되면 지금처럼 개인주의 온전히 자기 혼자 이걸 돌봐야 된다고 생각하면 계산이 안 되는 것을 혼자 몰빵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20년 30년 동안 내 삶을 희생하면서 얘기만 매달려 있다.

요즘의 계산 속에 빠른 젊은이들이 그렇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사회적 돌보, 공동체적 돌보 전환이 안 되면은 그게 정말 출산과 육관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가 돼 버렸어요. 그니까 어떤 우리가 완전한 개인주의적 사회가 돼 버렸지만은 출상과 돌봄에 있어서만은 우리의 인륜을 생존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사회적 돌봄이 되지 않으면 이게 안 되도록 돼 있는 거예요.

음. 그렇다면 조용기자님이 각자 도생의 시대에서 함께 사는 길을 택하자라는 얘기를 하고 계신데 더불어 산다는 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인간은 없다.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제가 여기 온 것도 누군가가 운전해 줘서 온 거고 누군가가 쌀을 생산하고 누군가 해 줘서 밥을 먹고 오늘도 전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이렇게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 자체가 그렇게 돼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우리는 개인주적 삶 또 인간에 그 규차니즘 피고니즘에 물들어 가지고 관계를 힘들어 하지만은 관계를 힘들어하든 힘들어하지 않든 관계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존재의 근본 성질을 이해를 해야 돼요. 음. 자기 혼자히버리고 고립을하고 할수록 그것이 자유스러워지고 편리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지만은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더욱더 외로워지고 더욱더 심리적으로 더욱더 문제가 많기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인간 삶의 행복. 그러니까 그 하버대학교에서 무려 734명을 79년이나 연구해 가지고 인간은 어떨 때 가장 불행해지고 어떨 때 행복해지느냐 그걸 조사했을 때 예 결국 관계를 다 단절해 보내 결코 행복해줄 수 없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다른 요건 뭐 돈도 있고 무슨 지능도 있고 제주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결국 가장 행복의 최고 요소는 좋은 관계다.

음. 음니가 버리고는 행복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 가장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이 한국 교회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출생은 교세 축소를 가져오고 더나가 이제 한국 교회 위기를 맡게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저출생 타개를 위해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어떤 자세를 임해야 할까요? 그 그 문제에 대해서 이제 그 창세기 이제 1장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그러는데 이게 지금 단절된 거 아니에요. 그 창세기라는 그 책이라고 하는 거를 이제 볼 때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은 그 고대근동에 여러 창조 신화들이 많아 있어요. 근데 그것에 대해서 창세기가 뭐가 다른가? 그 창세기는 그것과 다른 질을 가지고 있는 있으면서 세하고 번하고 우리가 땅에 충만하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고대 근동의 창세기의 시절에 있었던 다른 문화들은 뭐냐면이 신들이 신들이 왜 인간을 창조했냐면 자기들한테 봉사하려고 자기 노동을 봉사하고 자기를 섬기라고 해서 인간을 창조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창세기에 나와 있는 새만 인간들한테 에덴 동산을 주주 주주고 거기에 먹을 것도 주고 모든 것이 풍족하게 창조하고 신이 에덴 동산 같은 모든 것을 주고 신이 인간을 섬기는 식으로 창조하는 것이 차이점이 있다라는 거예요. 네.

그런 그런데 이제 문제 핵심은 그 동산 한가운데 있는 거는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모든 걸 다 허락하시고 축복해 주시죠. 생육하고 벗고 땅에 충만하라고. 근데 문제는 한가운데에 있는 공동체의 것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을 개인이 약탈하거나 착취하지 독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거를 따먹었고 독점한 거예요.

그 부족한게 아니라 충만한데 공동체 것 개인이 야육강식화가 됐든지 사쪽으로 각자 도생으로 사쪽으로 공대축 것을 따먹었을 때에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나는 거죠. 다른 신들은 고대든에 전부 인간들한테 나를 섬겨라. 그리고 인간들을 착취하고 계속 그 고대 근동에는 형제를 살인하고 이웃을 살인하고 그리고 전쟁을 일으켜요.

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해서 허락해 주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는데 동산 한가운데 있는 공동체 것을 개인 사유하면서부터 죄악이 번색된 것이이 모든 문제의 출발이거든요. 네.

저는 아까 한 얘기랑 결부를 했어요. 지금 문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왜 이렇게 출산율이하고 고립사와 자살율이 이런게 높으냐? 냐면 고대근동의 다른신들처럼 공동체 한가운데 있는 것을 전부 사유 공유하는게 아니라 전부 사유화려고 하는 우리 마음에 이런 거 있어요. 그러한 사유화의 공동체 한가운데 있는 것까지도 내가 사유화 그러고 나만 잘 살고 어 나만 많은 좋은 거 많은 물질을 갖고 있는 물질 문명의 이런 힘과 그래서 그 문명은 늘 형제 살인 사건 아니면 전쟁을 일으켜요.

싸움을 일으키고 네. 그러한 문명과 지금 우리가 여태까지 쭉 얘기하는 사회적으로 출발할 때 사회적으로 출산하고 공동체가 양육하고 사회적인 자궁을 통해서 마을을 통해서 사회적 자궁을 만들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자궁을 만드는 이게 창조 창세기에가 우리한테 말한 에덴 동산이거든요.이 이 두 문명이 지금 충돌를 하는데 지금까지는이 물질문명적인 도시문명 당시에는 창세기에는 도시문명이에요. 그게 바벨탑이고이 도시 문명이이 공동체 문명을 압도하고 있는 거예요.

음. 그래 가지고 지금 저 0.75라는 7호라는 거의 공동 거의 인류의 미래가 없는 그 지구 지구 온나나 지구 기후이 거기까지 갔는데 여기에서 압도하고 있는데이 공동체 문명 창세기에서 내가 터치에 선지를 창조하노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는 이러한 생명과 돌봄의 사회적 자궁을 만드는데 이제 이런 이게 돌범 교회 돌봄 마을이고 여기에 이제 한국 교회가 가 음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하는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기에 적극 참여를 해야 된다는네 알겠습니다. 생영 기자님 뭐 목회자는 아니지만이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되고 또 어떤 자세로 좀 임해야 될까요?네 네.

그러니까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조금 그 이름 새로운 교회처럼 이렇게 공동체적 돌봄 그니까 우리 사회가 제일 그 시대적 소명들이 다 있잖아요. 지금 이제 워낙 개인주의 때문에 우리가 공동체들이 해체되고 그러면서 그 외로움이 가장 큰 사회적 질병 고독서라든가 자살도 다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이고 어 우리가 뭐 그 치매라든가 이런 것도 훨씬 더 외로울 때 이제 결정적으로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러거든요. 비율상으로도 훨씬 더 어 더 어 많은 사람들이 치에 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공동체적 그런 그 돌보을 위해서 교회들이에 적극적으로 좀 나서서 교회들이 그런 것을 위해서 국가 사회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죠.

이미 마을 깊숙히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국가는 돈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은 시스템은 가지고 있지만은 정말 교회만큼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교류를 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 교회야말로 그런 방향을 가치관을 좀 전환하면은 그 돌봄하는데 가장 그 전진적인 정말 방주의 역할이 시대의 소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자, 오늘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함께 사는 길을 택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지역 사회와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돌봄 교회를 통해서 마을의 생명과 돌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요. 혼샘의 벽을 넘어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더불어 함께 사는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자, 지금까지 부천세롬 교회 이원 목사 한결의 신문 조현 기자와 함께 있습니다.

두 분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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