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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적 자아'를 '돌봄교회'와 '마을목회'의 형태로 실천

도시에서 만난 바울

by 마을꼰대 2026. 3. 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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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사회의 고민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요. 특히 고린도전서라는 옛날 성경 말씀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찾아볼 거랍니다. 복잡하게 들리나요? 걱정 마세요! 쉽고 재미있게 풀어드릴게요.

고린도 교회, 왜 그렇게 갈등이 많았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로마 시대의 번화한 상업 도시 고린도에는 교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교회는 늘 분열과 다툼으로 시끄러웠답니다 . 마치 오늘날 우리가 겪는 개인주의와 갈등 문제와 비슷했죠 . 고린도는 '후견인-피후견인' 제도처럼 계급이 뚜렷하고, 지혜나 말솜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강했어요 . 이런 세속적인 경쟁 문화가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어온 거예요 .

교인들은 자기가 세례받은 사역자나 특별한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자랑하며 서로 잘났다고 다 퉜어요 . 심지어 영적인 은사마저도 자기 과시나 권력을 키우는 도구로 썼죠 . 바울 사도는 이런 문제를 단순히 행정적인 실수나 도덕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어요 .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기적인 자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답니다 .

'나만 아는 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이기적인 '개인적 자아'를 '공동체적 자아'로 바꾸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 '개인적 자아'는 자기 생존만 생각하고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남을 경쟁자로 보는 마음이에요 .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조차도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 쓰려 했죠 . 바울은 이러한 교만과 분열이 '십자가 신학'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 십자가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사랑을 뜻하니까요.

그는 교회를 '몸'에 비유하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라고 가르쳤어요 . 마치 손, 발, 눈이 각자 다른 역할을 하지만 결국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요 .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목적은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다고 강조했죠 . 즉, 나의 은사가 남을 위한 공공의 자원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공동체적 자아'의 핵심이랍니다 .

사랑이 없는 은사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후, 13장에서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길이라고 선포했어요 . 사랑은 여러 은사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은사가 작동해야 할 근본적인 방식이자 신앙인의 존재 방식 그 자체라고 설명했죠 . 아무리 특별하고 화려한 은사를 가졌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가치도 없다는 거예요 . 방언, 예언, 지식 같은 은사들은 언젠가 사라질 유한한 것이지만, 사랑은 영원하다고요 .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그저 감정적인 것이 아니에요.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아주 실천적이고 의지적인 행동이죠 . 심지어 남을 위한 희생적인 행동조차도 진정한 사랑의 동기가 없으면 위선에 불과하다고 단언했어요 . 결국, 내면의 '공동체적 지향성'이 중요하며, 재능과 은사를 통한 계급주의를 허물고 서로 겸손히 섬기는 태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답니다 .

죽음을 이기는 용기, '부활적 자아'는 무엇일까요?

'공동체적 자아'가 윤리적이고 관계적인 차원의 변화라면, '부활적 자아'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한계를 극복하는 완전한 존재론적 도약이에요 . 우리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남을 해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래요 . 예수님의 제자들도 죽음 앞에서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야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죠 .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 바울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잠시 쉬는 것일 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허무하고 쾌락적인 삶에 갇힐 수밖에 없지만 . 부활이 진리이기에 그리스도인은 해의 왕국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며 썩어질 육의 몸을 넘어 부활 때에 영의 몸을 입을 것을 소망하게 된다고 말했어요 . '부활적 자아'는 바로 죽은 자를 '살려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타인을 적극적으로 살려내는 역할을 한답니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놀랍게도 바울의 이타적인 헌신과 부활적 자아의 정신은 현대 진화생물학의 연구 결과와도 통한답니다 . 듀크대 교수 브라이언 헤어와 저널리스트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강하고 사나운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개는 개체 수가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해요 . 그들은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으며, 다정한 것이야말로 끝내 살아남는다"고 확언했죠 .

생존 경쟁이 강하고 냉혹한 이기적인 폭력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 오히려 다른 존재와의 협력, 고도로 발달된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친화력(다정함)이 자연이 선택한 가장 적합한 생존 전략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답니다 . '강자가 이긴다'는 옛 명제를 버리고 '함께할 줄 아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죠 . 이러한 통찰은 "서로 짐을 지라"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와도 완벽하게 일치해요 .

잊힌 사람들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진화생물학의 통찰은 사회적 파편화와 개인주의 속에서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행위로 '기억(Re-member)'을 강조해요 . 영어 단어 'Remember'는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것 이상이랍니다 . 'Re-(다시)'와 'Member(구성원이 되다)'의 합성어로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하나의 몸으로 접붙이는 생명력 넘치는 행동을 의미해요 .

다정함에 기초한 환대, 우정과 격려를 통한 연대를 통해 이웃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 바로 '부활적 자아'의 사회적인 모습이랍니다 . 부활적 자아는 타인을 경쟁자로 보는 강자의 논리를 버리고, 기꺼이 자신을 비워 약한 자를 다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만들어요 . 이런 행동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다정한 동역자'가 되는 길인 거죠 .

교회가 '마을목회'와 '돌봄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바울의 부활적 자아 신학과 진화생물학의 이타주의는 추상적인 이야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돼요 .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고독사, 자살, 빈곤, 돌봄 공백 같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마을목회'와 '돌봄교회' 모델로 구체화되어야 한답니다 . 마을목회는 교회가 건물 안에만 갇혀 양적인 성장에만 몰두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사회를 하나님이 부르신 선교의 현장으로 보는 것이에요 .

마을목회의 이상적인 비전은 특정 종교 집단만의 유익이 아니라,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적 선'을 추구하는 것이죠 . 개인주의에 찌든 삶을 극복하고, 도시와 농촌 어디든 상실된 공동체성을 회복하여 마을 전체를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만드는 과정이랍니다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실천하는 '삼애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

한국 교회는 돌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최근 한국 교회를 대상으로 한 '마을 돌봄 조사 결과'는 성도들이 '부활적 자아'로 변화하고 싶어 하는 강한 바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어요 .

조사 항목 (마을 돌봄 사역 인식) 긍정 응답 비율 신학적 및 목회적 시사점
보편적 돌봄의 필요성 공감 87% 사회의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육체적/정신적 결핍이 극심함을 방증함
마을 돌봄의 교회 성장 기여 91% 교회가 부활적 이타성을 실천할 때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생명력과 신뢰도가 상승함을 성도들이 체감함
돌봄 사역 참여의 내적 보람 89% 타인을 살리는 '살려주는 영'의 사역이 자아 성취의 최고 단계임을 보여줌
본질적 사역이라는 신학적 인식 47% (20대 56%) 전도 수단을 넘어선 사명으로의 인식 전환. 특히 다음 세대의 공공성 의식이 높음
'매우 실천하고 있다'는 응답 10% 인식과 현실의 심각한 간극. 실천적 인프라 및 신학적 동기 부여의 한계를 노출함
추진 방식: 기관/단체 협력 선호 76% 개교회의 자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타 기관 및 타 종교와도 연대하는 '공적 책임' 구조의 필요성

성도의 87%가 돌봄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84%는 자신도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상호 돌봄'의 중요성에 동의했어요 . 특히 마을에서 가장 돌봄이 시급한 대상으로 독거노인 등 노년층(78%), 아동(46%), 청소년(31%), 우울증 환자(17%)를 꼽아,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의 필요성도 강조되었죠 .

가장 놀라운 점은 91%의 성도들이 마을 돌봄 사역이 교회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고, 참여자의 89%가 보람을 느끼며 80%가 "교회의 공동체성이 강화되었다"고 응답했다는 거예요 . 헌신과 수고가 개인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생동하게 한다는 '부활의 역설'이 증명된 셈이죠 .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필요성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실제로 '매우 실천하고 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답니다 .

돌봄은 과연 여성의 몫일까요?

마을목회와 돌봄교회가 진정한 '부활적 자아'를 구현하려면 구조적인 한계를 돌아봐야 해요 .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는 마을공동체 운동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고착화하고 돌봄의 짐을 여성들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랍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살림과 돌봄'의 영역이 마을 운동 안에서도 '무급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아요 . 여성들은 집안일과 돌봄을 전담하면서도 마을 활동까지 참여하느라 건강과 생명을 소홀히 하는 모순을 겪기도 하죠 .

만약 돌봄교회 사역이 특정 계층의 일방적인 희생과 착취 위에 세워진다면, 이는 바울이 그토록 경계했던 불평등한 공동체 모델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요 . 바울은 몸의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 중요하고, 덜 귀하게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귀함을 입혀주어야 한다고 강조했거든요 . 진정한 부활적 자아는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구조를 깨뜨리는 데서 시작되어야 해요 . 살림과 돌봄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고, 남녀노소,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가 평등하게 돌봄의 짐을 나누어질 때 비로소 마을목회는 왜곡 없이 지속 가능한 생명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

결국 우리는 어떤 교회를 꿈꿔야 할까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은 단순히 행정적인 타협이나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었어요 . 그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개인적 자아'가 산산조각 나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공동체적 자아'로 성장하며, 나아가 죽음의 공포를 이겨 타인에게 생명을 주는 '부활적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죠 . 진화생물학이 경쟁이 아닌 다정함과 연대만이 강력한 생존 기술임을 증명했듯이 .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이웃을 향한 희생과 돌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영원한 생명을 낳는 수고임을 보증한답니다 .

오늘날 한국 교회가 겪는 사회적 신뢰도 하락과 파편화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길은 바로 이 '부활적 자아'를 '돌봄교회'와 '마을목회'의 형태로 실천하는 거예요 . 교회가 이기적인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지자체, 시민사회, 심지어 다른 종교와도 겸손하게 연대하고 . 잊히고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다시 불러들일 때 . 비로소 교회는 2000년 전 고린도 교회가 겪었던 분열을 넘어 세상을 살려내는 '살려주는 영'의 동역자로 거듭날 수 있을 거예요 . 세상 사람들이 비웃어도 이웃 사랑을 심는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거랍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생명이 지역사회와 마을이라는 땅 위에서 피워내는 가장 위대하고 다정한 기적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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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기술이 발전하고 돈이 많아져도, 사람들은 오히려 더 외로워지고 서로 멀어지는 것 같지? 이런 현상은 교회 같은 종교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쳐서, 자기 교회만 생각하거나, 자기 믿음만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해.

1. 나만 아는 '개인적 자아'의 문제점 / 2. 함께하는 '공동체적 자아'로 변화하기

 

3. 죽음을 이기는 '부활적 자아'로 나아가기

 

  • 옛날 고린도 교회도 지금 우리처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어.
    • 그때 고린도는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잘나가는 동네였거든.
    • 교회 사람들도 이런 세상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기가 세례받은 목사님이나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자랑하면서 서로 편을 가르고 싸웠어.
  • 바울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너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마음(개인적 자아)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어.
    • 이런 사람들은 마치 우상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자기 욕심이나 살아남으려는 본능에 갇혀서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보거나, 자기 잘난 맛에 살았지.
    •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은사)까지도 자기 자랑이나 권력을 키우는 데 썼어.
    • 이런 마음은 결국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무관심해지고,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어.

2. 함께하는 '공동체적 자아'로 변화하기

  • 바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하는 마음(공동체적 자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어.
    • 우리는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한 부분이라는 거야.
    • 이 말은 내 마음이 나 자신에서 다른 사람과 공동체로 향해야 한다는 뜻이야.
  •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은사)들이 왜 필요한지 설명했어.
    • 모든 은사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서로 다르지만 모두 소중해.
    • 마치 우리 몸의 여러 부분이 각자 다른 역할을 하지만, 서로 도와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 이런 은사들은 나를 뽐내기 위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 공동체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공공의 자원이라고 보면 돼.
  •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아가페)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어.
    •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야.
    •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그냥 감정이 아니라, 오래 참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는 아주 적극적인 행동이야.
    • 이런 사랑은 나를 비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십자가의 정신과 같아.

3. 죽음을 이기는 '부활적 자아'로 나아가기

  • 부활적 자아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두려움까지 이겨내는 완전한 변화를 말해.
    •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거든.
    •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것임을 알게 돼.
  • 이런 믿음은 우리를 완전히 바꿔놓아.
    • 나만 살려고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던 '개인적 자아'나, 서로 돕는 '공동체적 자아'를 넘어,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life-giving) 존재가 되는 거야.
    • 마치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거지.
  • 이런 부활의 믿음이 있으면,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아.
    •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리석어 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아.
    • 왜냐하면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기 때문이야.

4. 함께 살아남는 '마을목회'와 '돌봄교회'

  • 놀랍게도, 바울이 말한 이런 이타적인 마음과 부활적 자아는 요즘 진화생물학 연구 결과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에서는 강하고 사나운 것보다 서로 협력하고 다정한 생명체가 결국 살아남는다고 말해.
    • 이건 "강한 자가 이긴다"는 생각 대신, "함께할 줄 아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거야.
  • 이런 생각은 우리가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아주 중요해.
    • 특히 'Remember(기억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 한 몸으로 만드는 적극적인 행동을 뜻해.
    • 이것이 바로 부활적 자아가 세상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이야.
  • 그래서 요즘 교회들은 이런 부활적 자아를 실천하기 위해 마을목회와 돌봄교회라는 모델을 만들고 있어.
    • 교회가 건물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지역 사회로 나가서 이웃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거야.
    • 이건 단순히 종교적인 활동을 넘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실천하며 마을 전체를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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