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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한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과 소설적 주체성 규명

이야기의 힘

by 마을꼰대 2026. 5. 2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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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이야기 꾸미기(Fabulation) 영토와 비인칭적 정동 미학: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한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과 소설적 주체성 규명

 

들뢰즈의 이야기 꾸미기 이론과 비인칭적 정동 주체의 사유 구도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그의 후기 영상 철학 및 미학 저술인 『시네마 2: 시간-이미지』에서 예술의 가장 강력하고 정치적인 역량 중 하나로 ‘이야기 꾸미기(Fabulation)’를 제시한다. 들뢰즈에게 이야기 꾸미기란 단순한 사적 허구나 문학적 가공에 그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장치와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지배적인 역사적 사실주의(historical realism)에 균열을 내고, 공식적 기록의 틈새에서 지워지고 침묵을 강요당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가상의 차원에서 발명해 내는 미학적·정치적 실천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철학이 개념을 창조하듯 예술 역시 정동(affect)과 지각(percept)을 통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사유한다는 들뢰즈의 일관된 예술 철학적 신념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들뢰즈의 미학적 문제의식을 문학 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정교화한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혜수 교수이다. 이혜수 교수는 스피노자의 정서론과 들뢰즈의 예술론, 그리고 불교적 친연성을 결합하여 문학 속에서 민중의 주체성이 어떻게 새롭게 사유될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특히 이혜수 교수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들뢰즈의 이야기 꾸미기 및 애도의 문학과 연결함으로써, 역사적 참사가 남긴 트라우마가 개별 주체의 사적 영역을 넘어 어떻게 비인칭적이고 집단적인 정동의 흐름으로 재조직되는지를 분석한다.

이 이론적 구도에서 도출되는 핵심 개념이 바로 ‘비인칭적·정동적·집단적 타자 주체’와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이다. 근대 소설이 고수해 온 개별적이고 완결된 자아 중심의 주체성은 거대한 역사적 폭력과 마주했을 때 파편화될 뿐, 사건의 실재적 고통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 따라서 이야기 꾸미기는 사적인 ‘나, 너, 그대’의 인칭적 경계를 해체하고, 주체 없이 흘러다니는 기억과 감각의 흐름인 비인칭적 타자 주체를 등장시킨다. 이 주체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정동적 연대를 통해 집단화된 복수의 신체들로 존재하며, 연대기적 인과율을 넘어서는 비선형적인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을 형성하게 된다.

 

비인칭적·정동적·집단적 타자 주체와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의 출현 메커니즘

비인칭적·정동적·집단적 타자 주체의 등장 배경

전통적인 서사학에서 주인공은 자율적인 의지를 지니고 행동하는 인격적 자아(ego)로 설정된다. 그러나 전쟁, 학살, 국가 폭력과 같은 집단적 참사 속에서 인간은 자율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순수한 수동적 신체이자 폭력의 흔적이 새겨지는 기표로 전락한다. 이러한 극단적 폭력 앞에서 사적인 자아의 고백적 언어는 사건의 충격을 재현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이에 따라 이야기 꾸미기 이론에서는 사적 자아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비인칭적 주체성이 출현하게 된다.

비인칭성(impersonality)의 등장은 주체가 자신의 고유한 성명권과 사회적 정체성을 상실하고, 오직 외부의 힘에 의해 변용되는 ‘순수한 삶(a life)’의 상태로 변모함을 뜻한다. 이 단계의 주체는 논리적 이성이 아닌 정동(affect)에 의해 지배된다. 정동은 주체에게 귀속되는 감정이 아니라, 신체와 신체 사이를 흐르며 변용을 일으키는 물리적이고도 초개인적인 에너지이다. 폭력의 기억, 슬픔, 공포,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치욕은 특정한 한 인물의 내면에 머물지 않고 타자들의 신체로 전염되며 흘러다닌다.

 

이 과정에서 주체는 필연적으로 집단적(collective) 타자의 성격을 띠게 된다. 나 자신의 고통 속에 이미 죽어간 타자들의 고통이 침투해 있으며, 나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웅성거리는 타자들의 복수적 목소리들의 공명판이 되기 때문이다. 들뢰즈적 이야기 꾸미기에서 주체는 고립된 단독자가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매개하고 변용하는 신체들의 그물망이자 집단적 타자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의 의의와 시간-이미지

이야기 꾸미기를 통해 창출되는 시간은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물리적 시간(Chronos)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인과적 질서 없이 중첩되는 비연대기적 시간(Aion)이다. 지배적 역사는 과거를 이미 종료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박제하지만,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은 과거의 참사가 현재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잠재태(virtual)로서 매 순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성의 출현은 들뢰즈가 말한 '시간-이미지'의 윤리적 기획과 일치한다. 시간-이미지 속에서 과거의 비극은 죽은 역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살아있는 신체들을 뒤흔들며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열린 사건으로 재탄생한다. 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잠재적 공동체, 즉 '도래할 민중'을 호명하는 매개체가 된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고정된 사실로 환원하지 않고 지속적인 정동적 사건으로 현재화함으로써, 문학은 독자와 살아남은 자들에게 훼손되어서는 안 될 공통의 기억과 윤리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소설 창작론적 적용: '나, 너, 그대'를 탈피한 주인공의 구체적 변이 양상

소설 창작에서 들뢰즈의 이야기 꾸미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서사가 요구하는 자아 중심적 캐릭터 조형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소설가는 주인공을 완결된 내면을 지닌 사적 주체로 그리는 대신, 인칭의 한계를 넘어 끊임없이 변형되는 비인칭적 변이 주체로 창조해야 한다.

주인공이 지녀야 할 세 가지 구체적 소설적 양상

 

첫째, 주인공은 ‘되기(Devenir)’의 가변적 흐름 속에 있어야 한다. 특히 인간 중심주의적 자아를 내려놓고 물리적·생물학적 한계 상황에 신체를 개방하는 ‘되기-시체(becoming-corpse)’ 혹은 ‘되기-동물’의 양상을 지녀야 한다. 이는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감각적으로 연결되고 침투하는 존재론적 통로로 삼는 창작 기법이다.

 

둘째, 인칭의 다성성과 전치(transposition)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주인공의 목소리는 독백적 자아의 고백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웅성거리는 타자들의 복수적 목소리를 반영하는 다성적 장치여야 한다. 2인칭 호명(‘너’)은 단순한 청자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주체 내부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너져 상호 침투하는 정동적 매개체로 작동해야 한다.

 

셋째, 주인공의 신체는 정동적 수용성과 수동적 역량의 극대화된 장소여야 한다. 서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동적 영웅주의에서 벗어나, 사건이 가하는 힘과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그것을 언어 이전의 미세한 지각과 정동적 감각으로 번역하는 주체로 설정되어야 한다.

구분 전통적 사적 주체 ('나, 너, 그대') 들뢰즈적 비인칭적·정동적·집단적 타자 주체
주체의 존재론적 상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사적 자아(Ego) 및 심리적 완결성 인칭의 경계가 해체되고 끊임없이 변이하는 흐름(Haecceity)
인칭 및 서사 전략 일관된 1인칭 고백 혹은 3인칭 전지적 관점의 고정성 다성적 목소리의 혼재 및 2인칭 '너'를 통한 인칭의 전치와 매개
시간성의 구현 인과율에 기반한 과거-현재-미래의 연대기적 선형 시간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반복되며 미래를 발명하는 비선형적 시간
신체적 역량 행동을 주도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능동적 도구 외부의 물리적 폭력과 타자의 고통을 감각화하는 정동적 수용체
소설 창작의 궁극적 지향 개인의 심리 분석과 보편적 교양 서사의 구축 역사적 참사의 정동적 현재화 및 도래할 민중 공동체의 발명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분석: 이야기 꾸미기와 비인칭적 정동의 텍스트적 실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들뢰즈적 이야기 꾸미기 이론과 이혜수 교수가 강조한 비인칭적 정동 미학이 한국 문학에서 어떻게 구체적이고도 파격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걸작이다. 이 소설은 1980년 오월 광주라는 역사적 참사의 한복판에서 죽어가고 살아남은 주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 인칭을 넘어서는 비인칭적 언어의 흐름을 조직해 낸다.

제1장과 제2장: 동호의 존재 방식과 '되기-시체'의 미학

소설의 중심인물인 16세 소년 동호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희생자로 재현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제1장에서 서술자는 동호를 향해 끊임없이 "너"라는 2인칭 호명을 던지며 말을 건넨다. 이 "너"는 사적인 대상으로서의 너를 넘어선다. 그것은 살아남아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가 죽은 자를 호명하는 비인칭적인 부름이자, 독자 스스로가 광주의 현장과 동호의 신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만드는 정동적 장치이다. 동호는 도청 2층 난간에서 계엄군의 진입에 떨면서도 친구 정대를 두고 온 죄책감에 시신을 돌보는 일을 떠맡는다. 이처럼 동호가 상무관에서 시신들의 얼굴을 무명천으로 덮고 썩어가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양초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지우고 죽음이라는 절대적 타자성에 자신을 동화시키는 '되기-시체'의 미학적 실천이다.

제2장 '검은 숨'은 죽은 정대의 혼(soul)의 1인칭 시점을 통해 비인칭적 정동의 흐름을 극한으로 밀고 나간다. 여기서 정대의 혼은 물리적 육체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각과 정동을 생생하게 발화한다.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 피를 너무 흘렸어.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흘린 내 얼굴은 습자지같이 투명했어."

정대의 혼은 더 이상 16세 소년이라는 사적 정체성에 갇혀 있지 않는다. 그의 감각 속에서 시간은 기묘하게 확장되어 36세, 예순 혹은 이른 살의 나이조차 여리고 조그맣게 체감된다. 트럭에 포개어진 시신들의 더미 속에서 정대는 "수 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 덩어리가 된 우리들의 몸"을 바라본다. 이는 사적 자아가 해체되어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육체로 융합되는 비인칭적 국면을 적나라하게 시각화한다. 정대의 혼은 죽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냄새와 더러운 얼굴을 증오하면서도, 온전히 돌봄을 받아 청결하게 누워 있는 다른 젊은 남자의 시신을 보며 이상한 질투를 느낀다. 죽은 몸을 옭아매고 당기는 거미줄 같은 힘을 잘라내고 다른 영혼들을 향해 날아가 "왜 나를 죽였지"라고 묻고자 하는 갈망은 개인의 사적 원한을 넘어선다. 그것은 훼손당한 인간 존엄의 기표들이 공중에서 교신하며 형성하는 정동적이고 집단적인 타자의 언어 흐름이다.

분석 대상 (장) 서사적 초점 및 인칭 전략 들뢰즈·스피노자적 정동 및 '되기'의 양상
제1장: 우포늪 2인칭 "너"의 집요한 변주를 통한 소년 동호의 추적 공포와 죄책감의 정동적 변용, 타인의 시신을 돌보며 시작되는 '되기-시체'의 전조
제2장: 검은 숨 죽은 정대의 혼(soul)이 이끄는 비인칭적 1인칭 독백 사적 자아의 소멸과 집단적 신체(사체 더미)로의 융합, 거미줄 같은 육체적 당김을 끊으려는 탈영토화의 갈망
제3장: 일곱 개의 뺨 살아남은 은숙의 고통스러운 내면과 3인칭 서사 뺨을 맞은 신체적 트라우마의 현재화, 언어 검열과 고문을 통한 신체 파괴에 맞선 최소한의 존엄 수호

제3장: 은숙의 '일곱 개의 뺨'과 신체적 정동의 지속

제3장 '일곱 개의 뺨'은 살아남은 여고생 은숙이 19세의 나이로 출판사에서 일하며 겪는 일상적이고도 미시적인 고통을 다룬다. 은숙은 사무실에서 사상 검증을 당하며 수사관으로부터 일곱 차례의 뺨을 얻어맞는다. 이때 왼쪽 뺨을 때린 사내의 손은 특별히 크지도 두껍지도 않은 평범한 손이었지만, 그 충격은 은숙의 신체에 영구적인 정동적 낙인으로 남는다. 은숙은 독한 아카시아 향이 나는 껌을 왼쪽으로만 씹으며 여전히 목도리 아래 부풀어 있는 뺨을 느끼고, 두 번째로 날아올 그 손을 숨죽여 기다리며 걷는다. 이 뺨의 부풀어 오름과 통증은 과거의 물리적 폭력이 시간의 간극을 넘어 오늘날의 살아있는 신체 위에서 어떻게 영구히 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정동적 지각이다.

은숙에게 가해진 폭력은 단순히 신체적 구타에 머물지 않고 언어적·정신적 고문으로 이어진다. 정보부는 고지식하게 교정지를 검토하는 그녀를 압박하며 잉크를 쓸 수 없게 손을 망가뜨리고 정신을 철저히 짓밟으려 한다. 이는 주체의 언어적 표현 능력을 박탈하여 역사적 진실의 이야기 꾸미기를 원천 봉쇄하려는 국가 장치의 억압 기법이다.

하지만 은숙은 퇴근 후 캄캄해진 사무실에서 두꺼비집을 내리고 캄캄한 유리문을 열고 나오며, 뜨거운 면도날로 가슴에 새겨진 듯한 유인물의 한 문장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를 끊임없이 되뇐다. 나아가 6월이 되어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다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때, 은숙은 시청에 전화를 걸어 분수를 멈추어 달라고 요구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일상의 아름다운 물줄기가 참혹하게 죽어간 이들의 피와 고통을 망각 속에 은폐하려는 기만적 장치임을 그녀는 신체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은숙에게 있어 살아남아 숨 쉬고 걷는 매일의 일상은 하나의 거대한 치욕(shame)이자 고통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와 싸우며 혼자 흐느낀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앓음은 사적인 우울증이 아니다. 그것은 동호의 죽음을 잊지 않으려는 윤리적 분투이자, 주체의 신체를 타자의 죽음과 기억에 매 순간 개방하는 비인칭적 정동의 수행이다.

결론: 비인칭적 정동 미학이 선사하는 문학적 영토와 윤리적 책무

질 들뢰즈의 이야기 꾸미기 이론은 문학이 역사적 비극을 다룰 때 취해야 할 가장 급진적이고 윤리적인 방법론을 제공한다. 이혜수 교수의 연구가 명료하게 가리키듯, 참사의 기억을 박제된 연대기적 역사 속에 봉인하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용되는 정동으로 활성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 꾸미기가 지닌 궁극적인 미학적 정치성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이러한 미학적 요청에 응답하여 사적인 주체성(‘나, 너, 그대’)의 안락한 틀을 과감히 파괴한다.

소설 속 동호와 정대, 그리고 은숙의 목소리는 고립된 개인들의 사소설적 독백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에 의해 허물어진 신체들이 서로의 고통을 삼키고 매개하며 형성한 비인칭적이고 집단적인 타자의 서사이다. 소설 창작론의 관점에서 이러한 비인칭적 주체성의 조형은 작가들에게 인간 중심주의적 자아를 넘어 세계와 타자의 고통에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노출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도래하는 민중적 시간이 열리게 된다.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의 숨결 속으로 불어 들어오고,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신체 위에서 통증으로 되살아날 때, 문학은 단순한 가공의 이야기를 넘어 역사의 망각에 저항하는 가장 준엄한 윤리적 영토가 된다. 그리하여 소년은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이, 언제나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불어오는 비인칭적 바람이자 정동으로서 ‘지금, 여기’로 도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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