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은혜의 하나님 주님의 크신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 오늘 우리 새롬교회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주님의 길을 걸어 오신 목사님의 은퇴를 기념하며 감사 드릴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는 40년이라는 긴세월 한결 같은 모습으로 새롬교회를 지키며 이영광스런 은퇴의 자리에 왔습니다 목사님의 모든 걸음을 지켜주시고 강건함으로 붙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40년 전에 목사님을 이곳 약대동마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때의 약대동은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열악하고 가난한 지역이였고 목사님은 기도로 복음의 싸앗을 뿌리셨습니다 말로만 외치는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는 예수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온 삶을 헌신 하셨습니다 약대동을 하나님 이 기뻐하시는 마을로 변화 시키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쳤던 목사님의 목회활동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줄 믿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약대동마을에 함께 사는 세상의 아름다운 가치를 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 담장을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마을만들기 활동에 앞장 서 오셨습니다 생명과 돌봄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이 땅에 가장 낮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헌신은 새롬교회와 약대동 마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을 것 입니다
이제 맡겨진 40년의 대장정을 마치고 은퇴하시는 목사님을 축복합니다 비록 새롬교회를 떠나시지만 앞으로 맞이 하는 제 2막속에서의 새로운 계획과 건강을 주님께서 지켜주실줄 믿습니다 목사님곁에서 묵묵히 함께 하신 사모님과 온 가족위에도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남겨진 새롬교회 교우들은 목사님이 남겨주신 예수공동체와 함께 사는 세상의 비전을 이어 받아 이웃을 사랑 하며 돌봄에 전심을 다 할수 있도록 주님께서 이끌어 주실줄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목사님을 향한 존경과 감사가 넘치게 하심을 감사 드리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원돈 목사의 은퇴는 단순한 은퇴식이 아니라 아름다운 축제이자 잔치이며, 작은 거인, 작은 예수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목사님은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 즉 묵상, 기도, 사랑의 길을 모범적으로 걸어왔다.
1986년 약대동에 교회를 세울 때부터 40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멈추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 도망가지 않으며 끝까지 걸어 아름답게 완주했다.
아름다운 공동체에서의 은퇴
새로운 교회는 한국의 초대형 교회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한 공동체이자 하나님 나라의 모범이다.
규모가 아닌 교회의 가치가 생명과 진정한 무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새롬교회는 복음을 말하는 데 멈추지 않고 살아내려고 했으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
새롬교회 성도들은 영성, 지성, 실천을 함께 추구하며 생각하는 신앙, 사유하는 영성, 행동하는 삶을 붙들고 살아온 귀중한 분들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일구고 함께 걸어온 목사님의 목회는 참으로 복된 여정이었다.
새로운 파송
성경의 이야기가 파송의 이야기이듯이, 이원돈 목사님도 새로운 현장으로 파송받고 있다.
목회의 한 장은 마무리되었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또 다른 장이 열리고 있다.
이는 마을 돌봄의 현장일 수도 있고, 신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새로운 영토일 수도 있으며, 미지의 세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아직 다 사용하지 않으셨고, 목사님은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며 젊다.
오늘은 은퇴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며, 진짜 은퇴식은 하늘에서 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목사님을 맞이하며 "여기 나와 함께 살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따라 살려고 애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복음을 말한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낸 사람, 진리를 탐구한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살아낸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이원돈이라는 사람은 작은 예수, 리틀 예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목사님은 그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더 자유롭게 꿈꾸고 앞서 실천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3.4. 서덕석 목사님의 축시: 약대동 복음이 마을의 예수님
<축시> 약대동 꼽이마을의 예수님과 함께 40년
약대동 꼽이 마을의 예수님은 교회당 안에 갇혀/사랑합네, 감사합네, 영광입네 하는 입바른 소리나 들으면서/ 뿌듯해하는 분이 아니시다./바쁜 사람 붙잡고 성경공부 하자든가/ 뜬구름 같은 천국 이야기도 하지 않으신다.//
약대동 꼽이 마을의 예수님은/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야박한 공고문 앞에서 허탈해하는/ 택배원 모습이거나/ 동네 코흘리개들과 게임에 져서는/ 아이스크림을 쏘는 이웃 누나, 삼촌 아저씨 모습이다.//
약대동 꼽이네 마을의 새롬교회는/ 교회당을 마을 주민들의 공간으로 내놓아/ 아이들이 몰려 와 놀이판을 벌이고/ 심심하신 할머니들이 주섬주섬 소일거리를 풀어 놓으시든가,/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서/ 컵라면을 먹으며 아지트로 삼는/편안하고 정겨운 동네 마실 터이다.//
아기들을 위해서 '어린이집'을 들이고/ 커 가는 아이들의 '지역아동센터'를 열었다./ 저마다 형, 언니, 누나, 오빠, 동생이 되어/ 돌봐 주고 이끌며 따르면서 사랑하고 존중받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삶터이자 배움터가 되었다./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책을 마음껏 읽게 하자 해서/ 책들을 긁어모아 '약대가족도서관'도 열었다.//
'신나는 어르신 마음'에서 어르신들은/ 쓸쓸한 노년 대신 빛나는 은빛 날개를 달았다./ 여럿이 함께하면 못 할 일이 없다고/ '달나라 떡 토끼' 협동조합 떡 공장도 차렸다.//
열심히 일했으면 놀기도 잘해야지/ 옥상 한 평 갤러리에 주민들의 그림이 걸리고/ '세어림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흥겨우며/복사골 영화제도 부럽지 않은 '꼽사리영화제'가/ 약대동 여름밤을 화려하게 밝힌다.//
약대동 꼽이 마을에서는 세 사람만 모이면/ 재미있고 유익하고 신나는 일들이 만들어진다./ 꼽이 청소년 심야식당과/ 혼밥, 혼술하는 청년들의 밥상/ 모임과 갱년기 마음 따뜻한 이모 삼촌들의 '우따이삼 동아리와/ 수요인문학 카페와 마을대학에서/ 못다 한 인생 공부로 세월이 가는 줄 모른다.//
약대동 꼽이 마을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교회당 속에 갇혀 계시던 예수님을/ 교회당 밖으로 불러내어 마을의 예수님이 되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고 도전해 온 실천 뒤에/ 새롬교회 교우들과 이원돈 목사의 기도가 있었다./ 복음의 알짬과 바울 선교를 씨줄로 삼고/ 공동체 생활과 마을 만들기를 날줄로 삼아/ 약대동 '꼽이마을 돌봄공동체'를 이루었다.//
예수님이 갈릴리호숫가의 배고픈 무리를 보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부탁하신 말씀을/ 새롬교회 공동체는 "너희가 저들을 돌보라"는 말씀으로/ 새겨듣고 응답한 것이었다.//
약대동 마을에서 예수님과 함께 시작한/ '생명망 만들기' 운동은 약대동에 머물러 있지 않고/ 멀리 이웃 동네로 알려지고 퍼져나가/ 마을이 곧 교회이며 교회가 곧 마을의 중심센터라는/ '마을목회신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약대동 꼽이 마을에서 예수님과 함께/ 새롬교회공동체의 끈질긴 기도와 실천을/ 40년간 이끌어 온 이원돈 목사님의 사역에/ 약대동 꼽이, 꼽사리들의 열렬한 응원과/ 하늘의 축복이 별빛처럼 쏟아지기를!/ 꼽이들의 세상에서 즐거워하시기를!
3.3. 이세광 약대중앙 교회 목사님의 축사: 정년 완수와 고향 약대동
특별하고 신나는 예배
이세광 목사는 이러한 예배는 처음 본다며,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특별한 예배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을 사역의 동반자
약대중앙교회 목사로서 15년 전 약대동에 와서 목회를 시작할 때 이원돈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마을 사역을 함께 하자고 초청해 주셨다.
꼬비 식당, 꼬비 영화, 마을 전도 등 여러 사역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으며, 은퇴 소식에 섭섭함을 표했다.
후임 목사님과 함께 그 사역들이 약대동에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은퇴가 아닌 정년 완수
이세광 목사는 자신의 교회에서 은퇴하는 권사님, 장로님들에게 '은퇴' 대신 '정년 완수'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은퇴는 퇴물이 되는 것 같아 없어지는 느낌이지만, 정년 완수는 하나님께서 주신 한 해를 잘 완수했다는 의미이다.
40년의 사역을 잘 완수한 이원돈 목사님께 박수와 감사, 응원을 보냈다.
약대동 토박이로서의 감사
약대동은 이세광 목사의 고향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태어난 토박이 가문이다.
이원돈 목사가 약대동에 와서 수고하고 애써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며, 외부에서 힘써준 분들 덕분에 약대동이 좋은 동네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약대동이 앞으로도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동네, 함께 연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 동네가 되기를 바랐다.
3.5. 최순영 전 시의원의 축사: 마을 만들기의 모범
땅을 함께 샀던 당사자
최순영 전 시의원은 이원돈 목사님과 이곳의 땅을 살 때 같이 샀던 당사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부천 여성 노동자 활동을 하며 이곳에서 튼튼이 어린이집이라는 탁아소를 시작했다.
억압받던 약대동의 변화
당시 약대동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아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악하고 비가 오면 억압받던 동네였다.
젊은 시절의 이원돈 목사를 보며 "진정 이런 분들이 목회를 하신다는 거는 정말 예수님 말씀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마을 만들기의 모범과 새로운 시작
40년이 흘러 이원돈 목사가 부천에서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마을 만들기 공동체를 실천해 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었다.
현재 부천 y 이사장으로서 자신도 이 마을 만들기를 부천에서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되었다.
이원돈 목사의 은퇴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며, 60세 넘으면 청년기라고 하듯이 새로운 청년의 힘으로 부천의 미래를 꾸려간다면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공동체의 가장 모범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돌봄 공동체의 선두 주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모두 건강하게 함께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고 독려했다.
4.4. 지성수 목사님의 축사: 골통들의 연대
부천 민중교회 활동과 결혼
지성수 목사님은 부천에서 민중교회 활동을 같이 했으며, 이원돈 목사가 총각 시절 결혼을 어떻게 할지 걱정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나는 집신도 짝이 있다"는 말처럼, 이원돈 목사가 결혼한 사람을 데려왔을 때 "오래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40년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골통들의 모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 골통들이야. 당신들은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하고 다른 사람들이야. 당신들 보통 사람들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끝까지 함께 가자고 독려했다.
4.5. 임종환 약대 감리교회 장로의 축사: 통합 돌봄의 새로운 모델
보건 의료 전문가로서의 통합 돌봄 주창
임종환 장로는 의사이자 보건 의료 전문가로서 주치의 제도와 통합 돌봄을 정부가 정책화하기 전부터 주창해왔다고 소개했다.
이원돈 목사가 돌봄에 대해 주장하는 내용들이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여 사회 변화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신앙의 가치를 일깨워준 목사님
약대동에서 이원돈 목사를 만나면서 신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신앙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한국 교회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었는데, 목사님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돌봄 모범
약대동에서 교단은 다르지만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돌봄을 실천하는 부분들이 한국 교회의 새로운 돌봄 모범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사회 주도의 통합 돌봄 강조
부천시가 통합 돌봄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 사회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통합 돌봄 의제를 정치 의제로 올렸을 때 부천시가 가장 빠르게 반응하여 노인 돌봄 전국 1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행정 중심으로 추진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부천 시장이 참석한 것은 시민 사회와 손잡지 않으면 통합 돌봄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부천시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를 바라며, 사회 연대 경제를 통해 통합 재정을 직접 만들자고 주장했다.
새롬교회가 하는 노인 장기보험이나 건강보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은둔 외톨이 돌봄은 병을 키우는 부분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에 큰 위협이 된다.
새롬교회의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며,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돌봄 기반과 돌봄 재정을 만들어 부천시가 새로운 희망을 밝혀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89년 12월. 새롬교회가 김장을 하던 날. 첫 인사를 왔습니다. 나름 첫 인사라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왔지요. 땅은 질고.. 김장까지 김장을 한다고 말을 해주면 좋았을 것을.. 그런 감수성이 부족한 남편과 지금까지 함께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제일 되고 싶지 않은게 바로 사모였는데 하나님이 그 자리를 제게 덜컥 안겨주셨습니다. 친구들은 교인들한테 시집살이할까봐 걱정했지만 저는 새롬교회에서 시집살이를 하진 않았습니다. 우리 집사님,권사님들은 항시 내편이었기 때문이지요. . 90년대 약대동 신혼집에는 술취한 청년이 들이닥치기도 했고, 매맞고 피신온 여성이 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약대동이 많이 개발이 되었다지만.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입니다. 저 또한 약대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또 여기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35년동안 새롬교회는 저에게 기쁨이 되기도, 서러움이 되기도 하고 사랑을 배우는 학습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고,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곱으로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 살 것입니다. 이별은 짧지만 그리움은 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4.3. 이원돈 목사의 마지막 인사: 선교팀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
두 번의 재난과 사역의 전환
목회 자료를 요약해 보니 두 번의 재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IMF 재난 때 마을을 만났고, 코로나 재난 때 통합 돌봄을 만나면서 사역이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초대교회 선교 네트워크의 정신 계승
부활절 마당극을 통해 초대교회 고린도 교회의 어려움을 잠잠하게 했던 바울과 바울의 선교 네트워크(빌립보 교회의 루디아, 로마 교회에 보낸 뵈뵈, 고린도 교회의 브루스길라, 아길라 등)처럼, 교회 선교팀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40년을 이끌어갈 선교팀 소개
40년 전 혼자 왔지만, 앞으로는 여기 함께 서있는 약대동 새롬 선교팀들이 새로운 40년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