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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와 이방선교사 바울의 탄생과 성장” (갈 2:4~8)=2025 5.18일 부천 새롬교회 주일말씀 /초대교회는 도시 마을 공동체 운동이었다!!.=

그와함께 춤을

by 마을꼰대 2025. 5. 1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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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639L3sbm6Y

 

유대교의 근동에서 순교당한 의로운 자들의 전통이 예수 부활 운동이 로마제국의 도시 디아스포라에게 전달되면서 예수의 부활운동은 로마제국의 착취와 약탈가운데 있는 로마 속국의 도시에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일으켰던 나눔과 협동의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전파 부활 하기 시작하고, 로마의 도시 한가운데서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급속도로 힘을 얻기 시작한다.

 다메섹지역의 박해자로 등장한 바울이 다메섹 지역에서 대중들과 시대의 변화를 바라 보면서 박해자에서 전향자로 바뀌면서 바울은 당시 유대적 지도자 야고보와 베드로 바나바를 넘어 율법과 할례의 폐기까지를 주장하며 이 도시 마을 운동의 독자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유럽땅에서에클레시라는일종의 도시 마을운동에 큰 성공을 이루게 된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1:26) 성경의 기록 에 의하면, 점차 세를 더해 가던 기독교 운동의 추종자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혹은 그리스도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은 안디옥에서였습니다(11:26).

제자들이 처음 흩어져 안디옥 방향으로 간 이유도 바로 박해 때문이었다. 사도 베드로는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4:16). 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재판과 박해라는 매우 긴박한 고난 상황속에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불같은 고난을 견디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부활신앙으로 사는 초기 안디옥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신앙때문에 붙여진 별명인 것 입니다.

안디옥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1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 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면서 오순절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인종적 언어의 다양성을 크리스쳔이라는 정체성으로 통합해 예수님을 믿게 된다.

2. 안디옥에서 모든 인종적 언어적 지역적 이념적 하위 정체성들이 예루살렘과 안디옥을포괄하여 사도회의를 통해 크리스쳔이라는 상위 정체성으로 확장 통합되었다.

3 안디옥교회는 이러한 새로운 크리스쳔이라는정체성으로 모든 차이점을 예수 그리스도로 통합하고 묶어 세워 이방땅으로 파송하는초대교회 세계선교의 베이스 캠프가 된다!

누가 바울의 대적자이었는가?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2)

(5;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하는 자는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이러한 바울의 급진적 복음이해는 당시 예루살렘과 안디옥으로부터의 모든 지원이 끊기고 유대인으로 부터는심각한 박해를 받았지만 역으로 이러한 신앙 때문에 바울은 베드로와 바르나바와대등한 이방인을 향한 독립 사역자의 위상을 확보하게 됩니다. 바울의 모든 선교거점 도시는

그리스 로만 문명의 주신들이 후견하는 도시였습니다. 바울의 선교사역은 이 친로마적 식민

도시들의 주신들의 물질적 축복과 개인의 명예와 성공에 중독된 로마문명의 폭력적 지배 문화

를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복속시키는 사역이었다. 하나님 우편보좌에 앉은 주 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 표적과 권능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으로부터독립한 선교사 바울은 1차세계전도여행때바나바는마가를데리고 키프로스로 갔고, (4) 바울은 실라를데리고 더베와 루스드라로 갔다.(15,37~39)

바나바와 바울 선교팀은 키프로스를 떠나 페르가에 당도했고, 거기서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갔다.바울은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나누지 않으며 심지어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노예의 이분법도 부정했다.(3,28) 혈통도,성별도,신분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것은 당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던 유대 율법 중심주의적 원리주의자들에게는 하느님과 민족을 배신하는 치명적인 신앙의 왜곡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낡은 유대적 잔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은 1차전도여행내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이고니온에서 와서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돌로 쳐서 바울이 피투성이다 되어 성밖으로 끌려져 나오는 장면등수많은 돌팔매를 부활신앙으로 이겨내면서 그 십자가와 부활의 피값으로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합니다.

바울의 방향전환의 의미?

소아시아를 가다가 마게도냐로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16;9)마케도냐 즉 유럽의 부르는 소리듣고바울이 마케도냐로 출발한 2차 전도 여행 때 가장 먼져도착한 곳이 바로 빌립보인데 바울이

그곳에 개척한 가정교회가 두 개였는데, 첫째는 루디아집의 가정교회고, 둘째는 빌립보 간수장

집에서 열린 가정교회입니다.. 이렇게 이방땅 마게도니아에서 새롭게 열린 초대교회는 크게

두가지 특성이 눈에 띠는데

첫째는 유럽에서의 바울의 선교 네트웍에는루디아, 브르스길라 빌레몬, 뵈뵈와같은 평신도 리더들이 넘쳐났고,둘째는 이런 변방의 바울의 평신도 네트웍이 유럽 선교의 문을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 입니다.

유럽 선교 활동은 성문밖강가에서 차별받는 일군의 여성의 무리들을 성령께서선택하셔서 그들 중심으로 빌립보에서 교회를 세워 빌립보를 유럽의 선교적 중심 공간으로 세워 나가는 것으로 부터시작이 됩니다.두아디라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6:14) 유럽 선교 활동은 성문밖 강가라는 소외와 차별의 주변에서 여성들의 위기적 삶의 공간에게로부터 이방인 속의 이방인 두아디라여인인 루디아가선택되면서 부터,즉 성적으로 인종적으로 계급적으로 차별받는일군의 여성의 무리들을 성령께서 선택하셔서 그들이 성문밖에 있는 빌립보에서 교회를 세워 유럽의 선교적 중심 공간으로 세워 나갔다는 것 이고 이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루디아를만나고, 선교하면서부터복음이 다른 언어, 다른 감성, 다른 세계로 복음이 진입함을 의미 합니다. 다시말해남성의 언어에서 여성의 언어로,유대인의 언어에서 이방인의 언어로 본격적으로 바울이 변방과 이방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성령의 소통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유럽에서 새로운 선교의 역사가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에는 사도 바울의 초대교회 동역자들이 대거 모여들기 시작 합니다,

낡은 세력의 대표격인 유대인들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이러한 새로운 복음을

받아들인 신생교회 데살로니카교회는 예수를 믿자 마자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당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날마다 말씀을 상고 할 뿐만 아니라 귀족층과 상류층에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신생교회의 성도를들잘 돌보고 양육하는 메시아적 돌봄 교회로 온 마케도니아 땅에 소문이 났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쟁 해결을 위한 힘 있는 소수들의 자신의 명예를 높이려는 분쟁임을 간파하고 십자가 신학을 통한 고린도교회 치유

고린도서는 북-마케도니아 지역 빌립보 데살로니카등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남부의 고린도 부자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그리고 그리스도파 이렇게 네 파로 나뉘었다는 분쟁소식에 대한 사도의 긴박한 편지 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었지만, 사실은 고린도 교인들의 분쟁의 핵심내용은 로마문화사이에 퍼져 있는 힘 있는 소수들의 자신의 명예를 높이려는 분쟁임을 간파하고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이러한 로마풍의 허위의식과 명예의식에 대해 거룩한 유대인들은 복음을 미천한 걸림돌로 보고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헬라인들은미련한 것으로 보나 우리 믿은 자들은 이 약하고 미천한 것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고 전하면서 이러한 십자가 신학에 기반한 십자가 목회로 고린도 교회를 치유한 서신인 것입니다.

고린도서 12장 은사장:

 

은사를 개인의 사익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공동체를 섬기는데 사용하라!!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121-11)

고린도서 13장 사랑장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리라” (고전12:31)

로마에는 안전한 공간이 없었습니다. 오직 귀족들만이 안전한 공간에 살았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놀이개로 살았고,다른 사람들은 노예로 비참하게 살거나 원형경기장의 맹수들의 밥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와 마을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와 마을을 섬기라고 주신 은사를 잘못된 사용하여 분파를 만들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시정하고자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12장 은사장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리라(고전12:31)

 

그리고 13장에 사랑장이 나옵니다.

고린도서의 부활장은 낡은 이기적 자아는 죽고 새로운 공동체적

(돌봄교회와돌봄마을) 자아로 변화 부활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린도 교회의 부활은 썩을것에서 썩지 않을것으로 변화이다.(고전 15:54)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이신,김동춘 교수님은 도시에서 공동체 운동은 성공하기가 힘이든데 초대교회와 바울은 그것을 성공시킵니다. 데살로니카서에서 바울의 부활은 로마적인 삶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적인 삶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한것이라면 고린도 전서는 낡은 이기적 자아는 죽고 새로운 공동체적 자아로 변화 부활하라는 말씁입니다.(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라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의 오늘날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그 변화는 구체적으로 오늘날 무엇이 될까요?그것은 우리의 이기적 개인이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죽고 돌봄교회로 돌봄마을이라는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부활하라는 생명의 말씀인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약한자멸시하고, 예수를 따른기보다는 당시 강남문화인 로마 문화 에 중독되었습니까?.그 로마문화는 중독, 폭력, 우울 피곤이 가득한 문화였고 이러한 로마문화가 고린도 식민사회에도 만연하여 오늘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가져오고 있는 것 입니다.

교회란 누구인가?로마시대에 한무리의 예수를 따르는 작은 공동체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

하였는데 그중 브르스길라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 에서는 여성과 노예가 안전하게 모일수 있었습니다.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이었고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하나님 나라의 교회(에클레시아)이었습니다.로마의 에클레시아에는 노예와 여성을 들어갈수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성 브르스길라와뵈뵈(겐그리아지역)의 집 에서 모이는 교회에는 여성과 노예들이 안전하게 모일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말씀을 선서를 해야 하였다고 합니다.이렇게 그들은 부활한 예수 공동체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고,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나라 (바실레이아)를 세울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사후, 초대교회는 단순한 종교적 운동이 아닌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도시 마을운동'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운동은 갈릴리 지역의 마을 사람들, 예루살렘의 갈릴리 출신 제자들, 그리고 헬라파 디아스포라를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이들은 자율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착취와 약탈 속에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시작한 나눔과 협동의 공동체 정신은 도시 곳곳에 새로운 형태의 '마을'을 만들어내며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를 단순히 신학적, 영적인 운동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을 넘어,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합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가 1세기 팔레스타인과 로마 제국의 경제적, 정치적 억압에 대응하는 사회적 운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메시지가 갈릴리 지역의 마을 공동체에서 시작된 나눔과 협동의 정신을 반영하며, 도시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의 '마을'을 형성했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계층적, 착취적 구조에 대항하는 자율적이고 평등주의적인공동체를 만들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초기 기독교가 도시 환경에서 '마을'과 유사한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개념, '도시 마을운동'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갈릴리의 마을 공동체 정신을 도시로 가져와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를 대체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호슬리와 실비만은 초기 기독교의 맥락을 로마 제국의 착취적 구조와 연결짓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과세, 채무 증가, 임대료 상승이 갈릴리와 유대 지역의 농민과 도시 빈민을 어떻게 고통스럽게 했는지 설명합니다.

부산CBS 국재일의 매거진B '2024인구론'

 

부산CBS 국재일의 매거진B '2024인구론'

https://youtu.be/lilHBITyfxc 부산CBS 국재일의 매거진B '2024인구론' 이원돈 목사, 조현기자방송일시 : 2024년 12월 6일(금) 오후 5시 녹화일시 : 2024년 11월 27일(수) 오후 3시 01. 두 분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

journal3931.tistory.com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메시지는 단순한 영적 구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협력과 나눔을 통해 로마 제국의 불평등과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경제적 대안으로 작용했습니다

자율성: 이 공동체는 로마 제국과 유대교 회당의 구조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자체적으로 자원을 관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지역의회"(ekklesiai) 형태를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44-45에서 묘사된 예루살렘 공동체는 모든 것을 공유하며 운영되었습니다. 평등주의: 로마의 후원 시스템을 거부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 노예와 자유인 간의 차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편지, 특히 고린도전서 11:17-34에서 부와 지위에 따른 갈등이 논의된 점은 이러한 평등주의적 이상을 반영합니다.경제적, 사회적 지원: 이 공동체는 과부, 고아, 가난한 이들을 지원하며, 로마 제국의 경제적 착취에 대항하는 안전망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초기 기독교가 도시 환경에서 '마을'과 유사한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개념, '도시 마을운동'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갈릴리의 마을 공동체 정신을 도시로 가져와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를 대체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예를 들어, 갈릴리에서 시작된 공동체 정신은 도시에서 새로운 형태의 '마을'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로마의 후원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초기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착취에 대항하는 사회적 대안으로, '도시 마을운동'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갈릴리에서 시작된 나눔과 협동의 정신을 도시로 가져와 자율적이고 평등주의적인형태를 형성했으며 이는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해석은 초기 기독교의 확산과 매력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이러한 특성은 코로나와 탄핵이후 한국 사회와 교회의 나갈길을 제시 합니다.

인도; 주님 저희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갈릴리에서 시작된 나눔과 협동의 정신을 도시로 가져와 자율적이고 평등주의적인형태를 형성했고 이는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작용했음을 배웠습니다,도시마을 운동으로의돌봄 마을 교회를 꿈꾸며 기도합시다!

회중 :주님 저희 약대동새롬교회도 바울 로마 교회의성도들 처럼

그리스도의복음을 통해 서로에게 덕을 세우고” “믿음으로말미암아

강하여지고” “함께 기쁨을나누는공동체를이루기를바랍니다.

 

다같이: 코로나와 탄핵이후 한국 사회와 교회의 새로운 나갈길이

바로 갈릴리 마을공동체의 공동체 정신을 도시 마을에 세운 초대교회의

도시 마을 신앙운동을 인줄로 믿고, 돌봄교회와마을 운동으로 힘차게 나갈수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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