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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인화 시대, 공동체가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그와함께 춤을

by 마을꼰대 2025. 5. 2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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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ilHBITyfxc

혼자가 편한 시대라고들 하죠. 하지만 우리 삶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숨어 있어요. 바로 돌봄과 관계이죠. 오늘은 혼자 살기 익숙해진 이 시대에 공동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왜 요즘 사람들은 결혼도, 아이 낳는 것도 망설일까요?

요즘 우리 사회는 저출생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 그 원인은 정말 복합적이죠. 수도권에만 사람이 몰리고, 집값은 너무 비싸고, 교육열도 엄청 높아요 . 압축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경쟁이 너무 심해졌고, 젊은 세대들이 많이 지쳐 있어요 .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고, 교회 같은 공동체에서도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죠 .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죠 . 문명이 너무 빨리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피곤해지고, 아이를 낳고 돌보는 데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시각도 있어요 .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가정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죠 . 너무 빨리 성장하면서 생긴 경쟁 사회의 피로감과 공동체를 멀리하는 마음이 저출생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
혼자가 편한 세상, 정말 괜찮을까요?

요즘은 '혼자 사는 삶'이 대세인 것 같아요 .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고, 1인용 상품도 잘 팔리죠 . 핵가족에서 더 나아가 핵개인 시대로 가면서 가정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도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 이게 무슨 의미냐면,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돌보는 관계망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 아이를 키우는 것도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 젊은 사람들은 이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
예전에는 농촌 사회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돌봐주고 아이도 같이 키웠어요 .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부모가 없어도 밥을 챙겨주기도 했죠 .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도시에 살면서 이웃과 단절되어 있어요 .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이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 거죠 . 예전에는 부모님이나 친척, 친구 엄마들이 아이를 봐주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관계가 많이 사라졌어요 .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죠 . 나이가 들면 상황이 달라져요 . 젊었을 때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어 돌봄이 필요해지면 혼자 사는 삶을 후회하기도 하죠 . 사회적 고립은 암이나 치매처럼 나이 들면 두려워하는 고독사로 이어지기도 해요 . 특히 남성들은 50대, 60대부터 고립이 시작되기도 한대요 . 사회적 양극화나 불평등도 결국 사람들이 고립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죠 .
돌봄은 여성이나 가족만의 몫일까요?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아이 돌봄이나 가족 돌봄을 여성이나 가족에게만 맡겨왔어요 . 하지만 이제는 여성이나 가족 혼자서는 돌봄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죠 . 돌봄은 이제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예요 .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는 '국가 돌봄'이나 시장에 맡기는 '시장 돌봄'도 한계가 있어요 . 그렇다면 누가 돌봐야 할까요? 바로 마을과 공동체가 돌봐야 한다는 '돌봄 민주주의' 개념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
돌봄을 여성이나 가족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참여하고 특히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 이것을 '돌봄 민주주의', '돌봄의 사회학', 심지어는 '돌봄 민주 국가'라고도 부른대요 . 더 이상 여성이나 가족에게만 돌봄의 짐을 지우지 않고, 사회 전체가 함께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공동체, 왠지 어렵고 두렵게 느껴지나요?

젊은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죠 . 1990년대부터 경쟁 중심 사회가 되면서 공동체가 많이 사라졌어요 .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공동체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죠 .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고독사나 사회적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
학교나 기존 공동체들도 공동체적인 삶을 가르쳐주지 못했어요 . 공동체적인 가치를 지키고 있는 교회나 시민 사회만이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요 . 전반적으로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어려움 중 하나예요 . 공동체 생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삶, 정말 행복해지는 길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 쫓는 삶에서 벗어나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 지칠 때도 많고, 혼자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죠 . 하지만 혼자 숨어버린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아요 .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죠 .
함께 사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면서 살아가요 .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죠 .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함께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돌봐야 온전히 행복해질 수 있어요 .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 혼자 사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지라도,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죠.
마을 공동체, 어떤 모습일까요?

마을 공동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 공동체는 둘 이상이 함께 살면 다 공동체라고 볼 수 있어요 . 부천의 약대동처럼 마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거나,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밥을 먹고 교제하는 것도 모두 공동체 활동이죠 . 단절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연결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요 . 공동체의 범위를 다양하게 넓혀서 생각할 필요가 있죠 .
마을은 하나의 생태계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 생태계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관계로 얽혀 있죠 . 마을은 유기체처럼 서로 관계를 맺고 돌보는 망으로 짜여 있어요 . 돌봄 마을이나 돌봄 교회는 이러한 관계와 돌봄 망을 통해 생명의 망을 만들어가는 곳이에요 . 부천세롬교회는 약대동에서 마을 목회를 하면서 마을에 학습, 복지, 문화 생태계를 만들고, 코로나 이후에는 돌봄 마을과 돌봄 교회를 세우면서 마을의 마당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있어요 . 교회와 마을을 연결하는 접촉점과 경계선에서 창조적인 마당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죠 . 이러한 마을 공동체는 저출산이나 고령화, 고독사 같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줘요 .
공동체 생활, 갈등은 없을까요?

공동체 생활을 하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툼이나 차이, 갈등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 갈등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죠 . 나치처럼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생각은 위험해요 . 열린 사고로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
둘이 살든, 공동체로 살든 싸움이나 부딪힘은 언제든 있어요 . 중요한 것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화해하는지예요 . 우리는 전혀 달라서 안 된다거나 갈등을 전혀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너무 닫힌 생각이죠 . 공동체 생활에서도 갈등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그 갈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요.
공동체, 소유를 포기해야만 할까요?

공동체 생활을 하면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개인 소유의 기쁨을 포기해야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하죠 . 물론 미국의 브로드프 공동체나 일본에서 시작된 야마기시 공동체처럼 개인 재산을 하나도 가지지 않는 무소유 공동체도 있어요 . 예수님 공동체도 원시 공산 사회와 비슷했다고 볼 수 있죠 .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워요 . 그래서 요즘 공동체들은 어느 정도 절충을 하기도 해요 . 예를 들어,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더 내놓는 식이죠 . 모든 것을 전부 내놓는 것만이 공동체의 형태는 아니에요 . 개인의 소유나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공유 주택이나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등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가 존재해요 . 꼭 모든 소유를 포기해야만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 동네에 맞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때문에 도시에 맞는 공동체 형태가 필요해요 . 시골처럼 전원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도시에서 어렵죠 . 공유 주택 같은 곳은 좋은 예가 될 수 있어요 . 겉보기에는 일반 빌라 같지만, 몇몇 가족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기도 하죠 . 모든 것을 100% 함께 하지는 않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같이 밥을 먹거나 함께 공부하고 교제하는 소규모 모임도 좋은 시작이에요 . 독서 모임처럼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것도 좋은 공동체 활동이죠 .
처음에는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지만, 함께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는 것을 느끼다 보면 용기가 생겨요 .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 완전히 모든 것을 공유하기보다는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공동체적인 삶을 조금씩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요 . 이렇게 조금씩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도시에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
공동체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공동체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죠 .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고 진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출산과 공동 육아라고 해요 .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지 않고 마을 전체가 함께 키웠다는 것이죠 . 이것이 인류 생존의 비결이었다고 고인류학자들은 이야기해요 .
문화인류학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 엄마의 자궁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궁에서 길러졌다고 설명해요 . 사회적 출산과 공동 육아가 발전해서 마을 전체가 사회적 자궁 역할을 했다는 거죠 . 그런데 지금은 이 사회적 자궁이 무너져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 국가 정책만으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사회적 자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요 . 사회적 자궁이 없는데 어떻게 생명을 낳고 키울 수 있겠어요 ?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계산으로 따지면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 20년, 30년을 키워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죠 . 계산이 빠른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을 쉽게 선택하기 어려워요 . 그래서 이제는 사회적 돌봄과 공동체적 돌봄으로 바뀌어야 해요 . 개인주의 사회가 되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사회적 돌봄이 꼭 필요하답니다 .
종교는 공동체 회복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출생 문제는 교회의 규모를 줄어들게 하고, 한국 교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요 . 그렇다면 종교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메시지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요 . 다른 옛날 신화에서는 신들이 인간을 부리기 위해 창조했다고 하지만 ,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축복해주셨다고 말하죠 .
문제는 공동체의 것을 개인 욕심으로 빼앗거나 독차지하면서 시작됐어요 . 부족하지 않은데도 공동체의 것을 사유화하면서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 거죠 . 오늘날 저출산이나 고독사 같은 문제들은 공동체의 것을 사적으로 가지려는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해요 . 이런 욕심이 형제를 해치거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죠 .
이러한 물질 문명과 함께 사는 공동체 문명이 충돌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물질 문명이 우세했어요 . 하지만 생명을 낳고 돌보는 사회적 자궁을 만드는 공동체 문명이 필요해요 . 이것이 바로 돌봄 교회와 돌봄 마을의 역할이죠 . 한국 교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공동체적인 돌봄에 적극 나서야 해요 . 교회는 이미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 교회가 가치관을 바꾸고 돌봄에 나선다면 이 시대의 중요한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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