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유대교와 완전히 다른 종교가 아니었어요 . 유대교 안에서 좀 더 새롭게 변화하려는 움직임이었죠 . 예루살렘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유대교 성전에 모였어요 . 하지만 그 안에는 부활의 영, 즉 성령이 함께하고 있었죠 . 이것이 유대교와 다른 점이었어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중에는 헬라파 신앙인들도 있었어요 . 이들은 유대 땅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살다가 온 사람들이었어요 .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교 성전에 모였지만, 이방인이나 헬라파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어요 .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여전히 유대교의 전통이나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 이들은 새롭게 온 헬라파 사람들을 차별하기도 했죠 .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한계였어요 .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초대교회는 변화가 필요했어요 . 특히 헬라파 신앙인들이 등장하면서 유대교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종교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
2. 헬라파 집사들의 등장, 왜 중요할까요?
초대교회에서 헬라파 신도들이 차별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 특히 헬라파 과부들이 무시당하는 일이 있었죠 . 이것을 본 헬라파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강력하게 항의를 했답니다 .
이 과정에서 일곱 명의 집사가 세워지게 되었어요 . 이들은 모두 헬라파 사람들이었어요 . 이 집사들은 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 즉 구제와 봉사를 담당했어요 . 성경에서는 이것을 '디아코니아'라고 부른답니다 . 이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셨던 것처럼, 말씀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어요 .
헬라파 집사들의 등장은 초대교회가 말씀과 기도뿐만 아니라 돌봄과 봉사에도 힘쓰는 교회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모습과 연결되는 부분이죠 .
3. 나그네와 광야 교회, 어떤 모습일까요?
스테판 집사는 초대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 그는 교회를 나그네와 광야 교회에 비유했답니다 . 나그네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죠 . 광야는 정해진 집이 없는 곳이고요.
스테판 집사는 유대교의 성전 중심주의를 비판했어요 . 성전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물이고, 하나님은 그런 곳에만 계시지 않는다고 했죠 . 교회는 건물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 마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아다니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던 것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거예요 .
이러한 나그네와 광야 교회로서의 모습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교회를 의미해요 . 고정된 곳에 머물며 안주하는 대신,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돌봄을 실천하는 교회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죠 . 성전에만 모이는 사람들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같다고도 했어요 .
4. 우리 교회가 마을의 마당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교회가 마을의 마당이 된다는 것은 교회가 지역 사회와 함께 숨 쉬고 소통하는 공간이 된다는 뜻이에요 . 교회가 건물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며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는 것이죠 .
초대교회의 집사들이 돌봄과 봉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돌봄을 실천하는 역할을 해야 해요 . 한 가족이나 한 개인에게 맡겨진 돌봄은 너무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전체가 나서서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죠 . 교회가 바로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교회 공간 전체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해요 . 예를 들어, 세대 공감 공간에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옥상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 이렇게 교회가 마을의 마당이 될 때, 교회는 지역 사회와 더욱 가까워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답니다 .
5. 37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우리 교회가 37주년을 맞이하면서 꿈꾸는 것은 바로 교회와 마을이 함께하는 공동체예요 . 초대교회가 유대교를 넘어 새로운 종교가 된 것처럼, 우리 교회도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
구체적인 실천 사례들도 있어요. 코로나19 기간에도 마을 심방을 창조적으로 해냈고 , 이것이 지금의 돌봄 마실로 발전했어요 . 돌봄 마실은 간호사님과 함께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겨드리고 마을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소중한 활동이에요 . 또한 부활절에는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 여행 예배에 마을 어르신들을 초대하기도 했고요 .
이러한 활동들은 교회가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마당이 되고 있음을 보여줘요 . 37주년에는 "친구야 밥 한번 먹자"는 이름으로 교회 공간 전체를 사용해서 마을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할 계획도 있어요 .
6. 돌봄 마을, 왜 중요할까요?
우리 사회는 지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요 . 정부에서 돈을 많이 쏟아부어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고 있죠 . 왜 그럴까요?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은 단순히 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에요 . 아이를 낳고 기르려면 사회적인 자궁, 즉 마을의 자궁이 필요해요 . 예전처럼 대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 핵가족 시대에는 돌봄을 한 가족이나 여성에게만 맡기기 어렵답니다 . 그래서 마을 전체가 나서서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양육하는 환경이 중요해요 .
노인 돌봄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 나이가 들면 요양소 같은 시설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살던 마을과 가족으로부터 격리되는 것과 같아요 .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고립이랍니다 . 아무리 좋은 시설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고 소외될 수 있어요 . 심지어 돌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약물에 의존하게 되기도 하죠 .
그래서 살던 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돌봄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이 중요해요 . 마을 교회가 이웃과 함께 노인들을 돌보는 돌봄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저출산 문제와 노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답니다 .
7. 경계선에 설 때 창조적인 인간이 된다고요?
초대교회 헬라파 신앙인들은 유대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어요 . 이들은 자기 나라 언어와 문화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도 함께 익혔죠 . 이것을 이중 모국어라고 해요 .
현대 문학자들은 이렇게 경계선에 설 때 사람이 창조적이 된다고 이야기해요 .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문화와 언어를 받아들이며 소통할 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창조성이 발휘된다는 것이죠 .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학문과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도 이러한 '경계인'의 특징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답니다 .
우리가 위기를 겪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새로운 생애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어요 . 바로 낡은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죠 . 요리, 글쓰기, 그림 등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창의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해요 .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복음이 세계로 뻗어나간 것처럼 ,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