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정말 넓은 지역을 다녔어요. 예수님은 주로 팔레스타인 주변에서 활동하셨지만 , 바울은 유럽 땅 끝까지 복음을 전했죠 .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마지막 행보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 누가는 바울의 여정을 예수님의 고난과 연결하려는 의도로 이렇게 편집했을 수도 있다고 해요 .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 시민권 덕분에 로마로 옮겨졌고 , 감옥에 갇혔지만 복음은 계속 전파되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사도행전은 마무리된답니다 . 이처럼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어요 . 그의 마지막 선교 계획은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 그리고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죠 . 정말 대단한 계획 아닌가요?
예루살렘 교회가 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까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 때문이었어요 .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재난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해요 .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유럽에서 개척한 교회들을 다니며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어요 .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사이에는 신학적인 생각 차이도 있었고, 이방인 선교나 율법 문제로 갈등도 겪었지만 ,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결심했어요 . 이것이 바로 그가 마지막 여정으로 예루살렘을 택한 핵심 이유 중 하나였답니다 . 그는 이 모금 프로젝트를 통해 교회 간의 일치를 이루고자 했어요 .
바울의 구제 헌금, 단순한 돈 모으기가 아니라고요?
바울의 구제 헌금 프로젝트는 단순히 돈을 모아 어려운 교회를 돕는 것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가 있었어요. 바울은 비록 예루살렘 교회와 생각이나 신학이 달랐지만, 교회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돕기로 했죠 . 이것은 교회 일치(에큐메니즘)를 위한 바울의 노력 이었어요.
그는 유럽 교회들을 다니며 이렇게 설명했어요. 예루살렘 교회가 비록 이방인 전도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예전에 합의한 내용들을 어기기도 했지만 , 그들은 제일 처음 믿는 사람들이었고 , 우리의 신앙의 조상과 같다고요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영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죠 . 이 영적인 빚을 갚는 마음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주어 영육 간에 서로 나누고 돌봐야 한다고 가르쳤답니다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코이노니아(교제)와 디아코니아(봉사) 정신인 거죠 !
바울의 마지막 프로젝트, 왜 '신앙의 모험'이었을까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엄청난 신앙의 모험이었죠 . 사도행전 21장 13절을 보면,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말했어요 .
이미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고난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도 있었어요 .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묶여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했죠 . 마치 예수님처럼 말이에요 . 주변 사람들은 바울을 뜯어말렸지만 , 바울은 이러한 고난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프로젝트를 감행했어요 . 은퇴할 나이에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대신, 스스로 고난 속으로 걸어 들어간 거죠 . 정말 대단한 용기 아닌가요?
바울의 '할 만큼 했다'는 말, 무슨 의미일까요?
바울은 에베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할 때,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며 "내가 유럽 땅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마치 연극 극단을 지키며 "할 만큼 했다"고 말했던 김민기 선생님처럼 말이죠 . 학전을 살렸는지, 성공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예요 .
바울은 이제 자신이 떠나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어요. 에베소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디모데에게 그 교회를 맡겼고 , 디모데전서에서 떠난 후에 있을 일들을 권면하며 교회를 부탁했어요 .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이탈시키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 바울은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으로 디모데에게 사역을 넘겨준 거죠 .
바울의 구제 헌금 프로젝트, 어떤 도전을 받았을까요?
바울의 예루살렘 구제 헌금 프로젝트는 순조롭지만은 않았어요. 특별히 고린도 교회로부터 큰 도전을 받았죠 .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이 모금한 헌금을 제대로 관리하는지, 누가 빼돌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시비를 걸었어요 . 심지어 바울이 진짜 사도인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
바울은 이러한 음모와 비난 속에서도 헌금의 공정성을 위해 각 지역 출신의 대표들을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려고 했어요 . 마케도니아, 데살로니가, 갈라디아,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갔죠 . 또 다른 도전은 예루살렘 교회가 과연 이방인 교회들이 모금한 헌금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였어요 .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들을 배척하는 상황에서 이 헌금을 받아들일지 미지수였던 거죠 . 자세한 결과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예루살렘 교회 대표인 야고보가 바울에게 정결 예식을 하도록 권유한 것을 보면 , 예루살렘 교회가 헌금을 쉽게 받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
바울은 왜 고난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갔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 예언자 아가보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했고 , 주변 사람들도 그를 뜯어말렸죠 .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겼어요 .
바울의 여정 중에는 실제로 많은 고난이 따랐어요 . 뱀에 물리고, 풍랑을 만나 섬에 갇히기도 했죠 . 하지만 이러한 모든 위기를 통해 하나님은 바울의 고난의 사건을 은혜와 복음 전파의 자리로 변화시키셨어요 .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답니다 . 이처럼 바울의 고난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드러났던 거예요 . 바울은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새로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죠 .
목사의 역할은 영혼 구원뿐일까요?
최근 최재영 목사님의 국회 청문회 사례를 통해 목사와 신앙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 어떤 의원은 최 목사님에게 "목회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 아닌가, 당신은 가짜 목사다"라고 추궁했죠 .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목사의 역할이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
하지만 성경은 신앙이 단지 영혼 구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요 . 전인격적인 구원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죠 . 신앙의 핵심이 영혼 구원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해요 .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이기심을 부추기기 때문이에요 . "너만 구원받으면 돼, 너만 좋은 곳에 가게 해 줄게"라고 말하며, 마치 마약처럼 자신만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
왜 영혼 구원만 강조하는 신앙을 조심해야 할까요?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는 신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요 . 첫째, 신앙이 오직 한 개인만을 구원한다고 가르치면서 이기심을 부추길 수 있어요 . "나만 천국 가면 된다", "우리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게 만들죠 . 이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신앙이라고 해요 .
둘째,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면 이웃과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게 될 수 있어요 . 교회와 목사가 개인의 영혼에만 집중하고, 물질 나눔이나 사회적 구원, 정치 문제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하죠 .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달라요 . 하나님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이죠 . 개인 구원에만 매달리는 신앙은 결국 기독교가 세상에서 외면받고 망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
교회와 목사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성경은 분명히 교회와 목사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 앞서 말한 것처럼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며 이웃과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위험한 신앙이에요 . 마치 황제나 권력자들이 영혼 구원 이야기만 하라고 하고, 나머지 세상 문제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과 같아요 .
성서는 이러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아요 . 교회와 목사는 통전적인 신앙을 가져야 해요 . 영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돕고, 사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며, 이웃과 공동체를 돌보는 일에도 힘써야 하죠 .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답니다 .
바울의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 정신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구제 헌금 프로젝트를 통해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 정신을 보여주었어요. 그는 유럽 교회들에게 "우리는 예루살렘의 영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며 , 물질적인 지원을 통해 영적인 교제와 봉사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죠 .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기본 정신이라고 강조했어요 .
코이노니아는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를 의미해요 . 서로 사랑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 함께 구원받는 공동체 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 디아코니아는 봉사와 돌봄을 의미하고요 . 바울은 헌금을 통해 이러한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를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왕국을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했어요 .
헌금의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고요?
바울의 구제 헌금 프로젝트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헌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생각하게 해요 . 헌금이 단순히 개교회 내부에서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이죠 . 교회가 크고 헌금이 많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시대는 아니에요 . 이웃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말이죠 .
진정한 헌금은 단순히 돈만 내는 것이 아니에요 . 바울처럼 이웃 교회와 지역 사회, 마을을 향해 열린 헌금이 필요해요 . 돈뿐만 아니라 시간과 마음, 몸을 들여서 하는 헌금도 중요하답니다 . 예를 들어 약대동의 세 교회가 물질과 시간, 몸을 헌신하여 마을을 돌보는 통합 돌봄 사례처럼 말이죠 . 이것이야말로 바울의 신앙 정신과 같은 거예요 . 이러한 헌금은 사회적 자본, 즉 마을의 신뢰를 얻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됩니다 .
약대동 세 교회의 통합 돌봄 사례는 무엇을 보여줄까요?
부천 약대동의 세 교회가 함께 통합 돌봄을 실천하는 사례는 매우 중요하고 뉴스거리가 되고 있어요 . 이 교회들은 자신들의 물질과 시간, 몸을 헌신해서 마을을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 이것은 단순히 건물 안에서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돌보는 바울의 신앙과 같은 모습이에요 .
이러한 노력은 시청 공무원들에게 보고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으며 , 마을 돌봄이 국가 돌봄의 한계와 시장 돌봄의 부재 속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음을 보여줘요 . 약대동 세 교회의 사례처럼, 교회가 지역 사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 물질과 시간, 몸을 헌신할 때 진정한 헌금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고 ,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적 자본이 되는 것이죠 .
바울의 신앙,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까요?
바울의 예루살렘 구제 헌금 프로젝트와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줘요 . 그의 신앙은 단순히 개인의 영혼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 간의 연합과 화해,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의 실천, 그리고 지역 사회와 세계를 향한 봉사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의 모험을 감행하며 ,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모습 역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바울의 이러한 정신을 통해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요 . 헌금의 새로운 개념을 기억하고 ,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 돌봄, 봉사 등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산 제사를 드릴 때 , 그리고 지역 사회와 세상에 봉사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 성령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거예요 . 바울처럼 용감하고 통전적인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