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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우리 마을 이야기

마을에서 만난 예수

by 마을꼰대 2025. 6. 1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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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xZl7hRixuY

 

1.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 마을에서 시작되었다고요?

예수님은 마을을 다니면서 정말 신나는 일들을 많이 하셨어요. 아픈 사람들을 고치시고, 중풍병 환자도 일으키셨죠. 세리의 집에서는 함께 밥을 먹으며 잔치를 벌였어요. 다른 동네에 가서도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하셨답니다. 이렇게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억압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죠. 죄인이라고 불리거나 병들고 가난하다고 속박되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를 경험했어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시작이었어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밥상을 펴서 함께 먹는 것(오병이어 사건)을 의미해요. 또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포함되는데, 이건 당시 정치 권력 같은 세상의 악한 세력을 물리치는 것을 뜻해요. 아픈 사람은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이게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답니다.

 

2. 잘 나가던 제자들이 왜 예수를 떠났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특히 예수님이 순환(고난)을 받으러 예루살렘으로 가신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떠날 준비를 했어요. 이것은 단순히 떠나는 것을 넘어 배반하고 부인하며 도망치는 것으로 이어졌답니다. 성경 마지막 부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는 모습으로 가득해요.

우리가 좋은 일이나 옳은 일을 할 때도 사람들은 쉽게 따라오지 않아요.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를 전하실 때 늘 사람들이 쉽게 따르지 않았다고 해요. 이탈하고, 배반하고, 부인하고, 도망치는 일들이 늘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영적인 눈을 뜬 사람들이 있다고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어려움 때문에 떠날 준비를 할 때,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어요. 이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지방이나 이방 땅에 살던 사람들이었어요. 데카폴리스라는 이방 땅에 살던 거라사의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되었고, 하혈병을 앓던 여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나았어요. 이 여인은 유대 법으로는 불결하다고 여겨져 격리되었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지고 마을 일꾼이 되었답니다. 스루보니게 여인도 자신의 딸을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나아왔고, 유대인들이 알아보지 못한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아보았어요. 이 여인 덕분에 오병이어 사건이 칠병이어 사건으로 이방 땅까지 확산되었고, 이 여인은 지역의 복음 전파자가 되었어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자신이 고난 받을 것을 말씀하셨어요. 이 경고들 사이에 소경을 고치는 이야기와 맹인 바디메오를 고치는 이야기가 나와요. 마가는 이 구도를 통해 제자들이 눈이 멀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소경을 고칠 때 두 번 안수하신 것은 물리적으로 보는 것과 영적으로 보는 것을 모두 이야기해요. 하지만 바디메오는 영적으로 눈을 떠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길로 나섰어요.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가 고난과 십자가를 질 때 영적인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바디메오는 가진 것이 없었기에 마지막 겉옷까지 버리고 예수를 따랐고, 십자가를 만지고 붙드는 데 성공했어요. 반면 부자 청년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해 순환에 동참하는 데 실패했죠. 십자가를 만지고 접촉할 때 치유가 일어나는 거예요.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영적인 눈이 열려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답니다.

 

4. 십자가, 내 죄 사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요?

십자가의 의미를 개인적인 죄 사함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내 죄가 씻겨진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이 땅에 오신 우주적인 의미를 개인의 차원으로만 축소시키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죠. 예수님을 자기만의 울타리에 가두고, 자신의 죄를 씻는 도구로만 여기며 개인적인 구원만 바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이런 신앙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요.

십자가 형벌은 로마 시대에 정치범에게 주는 형벌이었어요. 일반적인 죄수에게는 주지 않았죠. 로마 체제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에게 주는 형벌이었답니다. 십자가 형벌은 채찍 끝에 뼈 조각이나 납 조각을 박아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하는 무기를 사용하고, 손과 발을 못 박아 매달아 며칠 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하는 처형 방식이었어요. 이건 정치범에 대한 처형 방법이었답니다. 성경 마지막에 여자들이 무덤에서 도망가며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기록될 정도로 십자가는 무서운 형벌이었어요.

 

5. 부활, 무덤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만난다고요?

예수님의 부활을 무덤에서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으로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마가복음에서 부활은 무덤이 아닌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로 나타나요.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빈 무덤을 발견하고 청년으로부터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를 들었어요.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것은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넘어, 갈릴리에서 하셨던 일들을 다시 하라는 의미예요. 마을을 돌면서 아픈 사람을 고치고, 밥상을 펴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그 일들을 계속하라는 것이죠.

부활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들을 하는 것이에요. 새로운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마을에 학생 공동체를 만들고, 밥상 공동체를 만들고, 치유 캠프를 열었어요. 이런 일들을 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결국 부활은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이고, 갈릴리 마을처럼 돌봄 마을을 만드는 것이 부활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6. 바울은 죽었지만, 그의 사역은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결국 로마에 갇히고 순교했다고 전해져요.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다 이루지 못하고 구금되었죠. 하지만 그의 사역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사도행전 마지막 장과 로마서에는 바울과 함께 일했던 로마의 일꾼들, 선교 팀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요.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셋집에서 사람들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쳤어요.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같아요. 초라해 보이는 셋집에서 몇 명의 사람이 모여 성경을 연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았죠. 하지만 이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성경 연구가 300년 후에 로마 제국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되었어요. 바울은 죽었지만, 그의 성경 연구 모임과 선교 팀을 통해 복음이 로마까지 전파되었고, 이것이 부활의 또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을 듣고 떡을 뗄 때 부활하신 예수를 느꼈던 엠마오 제자들처럼,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의 일을 할 때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답니다.

 

7. 우리 시대의 십자가와 부활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목소리도 있어요. 개인적인 구원과 성공만을 강조하는 신앙 때문에 교회가 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길바닥에 내던져진 소금처럼 되었다는 비판도 있답니다. 과거에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으라는 이야기만 반복하거나, 대형 집회를 통해 교회의 세를 과시하는 것에 몰두하는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있어요. 성문 밖으로 나가 십자가를 지는 거예요. 독일 교회는 대형 집회 대신 디아코니아라는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돌봄 마을을 만들고 있답니다. 정부와 협력하여 돌봄 일꾼들을 지원하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돌봄에 참여하고 있어요. 우리도 지금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을 때 돌봄 마을을 만들고 돌봄 교회를 만들어야 해요. 부천시에서도 돌봄 마을 선언문이 발표되는 등 돌봄 마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답니다. 초고령 사회 진입에 대비하여 주거, 의료, 복지, 돌봄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지역 사회 통합 돌봄이 시급한 상황이에요. 우리 시대의 십자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돌봄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부활은 바로 그 돌봄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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