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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남은 자들

마을에서 만난 예수

by 마을꼰대 2025. 12. 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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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에서 왜 '예언자의 목소리'가 사라졌을까요?

위기의 시대, 진짜 '남은 자'는 누구일까요?

 

 

요즘 한국 교회 주변이 왠지 모르게 조용해진 것 같아요 . 과거에는 정의를 외치던 큰 목소리들이 있었죠 . 하지만 지금은 영향력 있던 고위 성직자들이나 유명한 영성가들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사라졌어요 . 심지어 늘 은혜와 축복을 강조하던 목사님들도 모습을 감추었다고 해요 .

한국 교회의 중요한 목소리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 사회에서 영향력 있던 성직자나 영성가들이 조용해졌죠 . 그들이 정의와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을 '좌파'라고 비난했기 때문이에요 . 평등이나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원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어요 .

박충구 교수님은 이 현상을 '신학이 없는 목회' 때문이라고 비판해요 . 많은 목회자들이 지적인 설교나 신학 공부를 쓸모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 이로 인해 교회가 '반지성주의'에 빠져 교인들을 생각하지 않는 신자로 만들어요 . 교회가 사회 문제 대신 오직 개인의 축복만 강조하는 '작은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어요 .

결국 신학을 버린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 '폐쇄적인 집단'이 되었어요 . 이런 교회는 승리주의나 번영신학에 중독된 우상 숭배자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죠 . 교회의 진정한 역할은 교회의 욕망을 비판하고 초월적인 하나님께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어야 해요 .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교회는 사회의 신뢰를 잃을 수 있어요 .

 

2. 1991년 소련 붕괴와 2025년 미국의 위기는 왜 중요할까요?

역사 속의 큰 전환점들은 '목소리 상실'로 시작되곤 했어요 . 성경에서 세례 요한이 잡히고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말이에요 . 오늘날에도 비슷한 위기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 1991년 소련이 무너졌을 때, 붉은 광장은 텅 비었고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졌어요 .

공지영 작가의 작품 속 모스크바에는 맥도날드의 'M'자만 혼자 반짝였다고 묘사돼요 . 이처럼 체제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역사와의 단절을 선택하고 자신의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자폐적 공간'으로 숨어버렸죠 . 진짜 '남은 자' 공동체는 고통받는 이웃과 연대해야 하지만, 이들은 철저히 고립된 채 남았어요 .

지금  미국 사회도 큰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해요 . 노숙자가 늘어나고 중산층이 무너지는 등 사회 불안이 심각하죠 . 심지어 소련 붕괴 때와 같은 공포감이 느껴진다고도 해요 . 이처럼 큰 체제와 중심이 흔들리는 시대에,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

 

3. 혼란스러운 시대, 진짜 '남은 자'는 누구일까요?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그의 제자들은 갈릴리 마을로 흩어졌어요 . 대표적인 인물이 빌립과 나다나엘이죠 . 이들은 위기 속에서 '실패한 남은 자'의 모습을 대변했어요 . 빌립은 혼돈 속에서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반응한 '연결자' 유형이었어요 .

반면, 나다나엘은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이었어요 .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의심했죠 . 나사렛은 변두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거예요 . 하지만 빌립의 간절한 요청으로 마지못해 예수를 만나러 가기로 했어요 .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줘요.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않으셨어요 . 그저 "와서 보라(Come and See)"고 초청하셨죠 . 체제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거창한 연설이나 교리를 믿지 않아요 . 그들은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실체'를 원해요 . '남은 자'는 중심부가 아니라 본질을 지키며, 논쟁 대신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어야 해요 .

 

4. 왜 '촛불 시민'의 에너지가 '생활 교양'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요?

 

우리 사회에서도 교양 시민이 사라지고 '팬덤 정치'나 '극우 정치'만 남았다는 고민이 있어요 . 유럽에서도 극우 정치가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시민 가치가 위협받고 있죠 . 한국 사회는 이웃과의 연대가 사라지고 각자 살길을 찾는 시대가 되었어요 .

물론 한국에는 4·19, 6월 항쟁, 촛불 혁명처럼 강력한 '정치적 시민'이 존재해왔어요 . 특히 촛불 혁명은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소중한 경험이죠 . 하지만 문제는 이 광장의 열정이 일상생활이나 마을에서의 실천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 광장의 힘만으로는 팬덤이나 극우 정치를 막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요 .


한국 중산층은 서구처럼 도덕적 리더십이 아닌, 아파트 평수나 연봉 같은 '물질적 기준'으로 정의돼요 . 이는 극심한 경제적 불안정성에서 온 구조적인 결과죠 . 이제는 촛불 시민의 정치적 에너지와 '마을 시민'의 생활 교양이 만나야 해요 . 단순한 제도 개혁을 넘어, 시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죠 .

 

5. 교회는 왜  '성장'을 버리고 '돌봄'을 선택해야 할까요?

 

한국 교회는 그동안 몸집을 불리고 건물을 크게 짓는 '양적 성장'에 집중했어요 . 하지만 건물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면서 공적인 책임보다는 내부 유지에만 신경 쓴 것이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예요 .

이제는 '성장' 중심에서 '돌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때예요 . 2026년에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면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체계가 구축될 거예요 . 교회는 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해요 . 교회는 지역 주민 전체를 섬기는 '열린 거점'이자 돌봄의 핵심 플랫폼이 되어야 하죠 .

과거 한국 교회는 원래 마을의 '플랫폼' 역할을 했었어요 . 1980년대에는 탁아소나 공부방을 만들었죠 .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실업극복운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요 . 교회는 다시 건물에서 나와 마을로 가 '마을 마당'이 되어야 해요 .

 

6. 교회가 'K 예수 마당극'을 펼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예수님은 회당 안에만 계시지 않고 갈릴리 마을로 나가셨어요 .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치셨을 때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죠 . 예수님은 마을 전체를 다니며 돌봄과 치유의 마당을 만드셨어요 .

 

교회가 마을의 마당이 되어 'k 예수 마당극'을 펼치기 시작하면 놀라운 변화가 생겨요 . 고립된 노인, 은둔형 외톨이 청년, 고독사 위기의 중장년들이 총체적인 구원을 경험할 수 있어요 . 마을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는 치유와 돌봄의 마당이 될 수 있죠 .

이러한 예수를 경험한 주민들은 스스로 이웃을 돌보자고 외치기 시작할 거예요 . 교회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나 노인을 위한 '통합 돌봄 마당'을 펼칠 수 있어요 . 일자리 교육이나 자활 사업을 위한 '살림 마당'도 펼쳐지겠죠 . 교회는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마을의 '대안 공동체'이자 공유 공간이 될 거예요 .

7. 'K 구원'은 무엇이 다를까요?

예전 미국 사회에서는 슈퍼맨 같은 '개인 영웅'이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주류였어요 . 하지만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이런 '개인 구원론'은 설득력을 잃었죠 . 서구 중심의 힘과 개인을 중요시하는 구원론이 한계를 보인 거예요 .

K-팝이나 K 문화의 열풍은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세상을 구한다는 새로운 구원 문화를 보여준다는 관점도 있어요 . 이제 한국 교회는 미국에서 온 '극우적 신앙'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 이러한 신앙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교회를 고립시키는 주범이 되었죠 .

우리가 꿈꾸는 'K 구원'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가는" 구원이 아니에요 .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 마을'에서 경험되는 구원이에요 . '돌봄'과 '살림'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경험되는 '총체적 구원'이 되는 것이죠 . 교회는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연대와 돌봄'으로 나아가야 해요 . 이웃을 섬기는 '마을 신자'와 책임 있는 '시민-신자'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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