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한국 교회를 비판해도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어요 . 사람들은 교회가 우리를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해 주기를 바라죠 .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사(Yasha)'의 문자적인 뜻이 바로 "넓은 곳으로 이끈다"는 의미래요 .
죄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선택지를 좁게 만들고 움직일 공간을 폐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것이죠 . 하지만 하나님이 '야사'를 행하시면, 이 폐쇄된 곳에서 넓은 광야로 우리를 이끌어내요 . 우리는 그곳에서 다른 삶을 꿈꿀 수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거예요 .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더러운 감옥을 빠져나와 비를 맞으며 자유를 느끼는 장면과 같아요 . 그가 보다 넓은 곳으로 나온 것이죠 .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정밀하고 견고해서 '이렇게만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 사람들이 삶의 선택지가 좁아질 때, 어디를 쳐다보겠어요? 그래서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거나, 정치에 종교적인 열망을 갖다 붙이는 일이 생기는 것이죠 .
기독교 수업, 학생들에게는 '하기 싫은 의무'일까요?
대학교에서 기독교 교양을 가르칠 때,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늘 도전이 되고 어렵기도 하다고 해요 . 특히 기독교 학교에서는 이 과목이 의무라서,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죠 . 교수님은 이런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어요 .
어떤 학생들은 정말 듣기 싫다고 말하기도 해요 . 하지만 교수님은 여기에 상처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 . 길거리에서 학생들이 물리 수업 듣기 싫다고 투덜대는 것을 들었대요 . 공부는 원래 힘들지만, 물리는 공대생이 되려면 해야 하는 것이라 구실이 없죠 . 그런데 기독교는 싫어할 만한 '구실'이 있어요 .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데 왜 이걸 들어야 하냐"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
하지만 수업을 들은 많은 학생들은 놀라운 경험을 한다고 해요 . 가장 많은 이야기는 "기독교가 이런 건지 몰랐다"는 반응이에요 . 기독교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이상한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요 .
교양 수업이 누군가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의 수업 덕분에 삶의 불행을 회복하거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막아준 학생들도 있어요 .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있다고 해요 . 한 학생은 어머니를 따라 이단 종교 단체에 들어갔다가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대요 . 그런데 이 과목을 들으면서 일종의 치유를 경험한 것이죠 .
또 다른 제자는 신천지 같은 건강하지 못한 종교 단체에 들어갔다가, 수업을 듣고 '이곳이 이상한 곳이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해요 . 교수를 신뢰하고 상담을 받아서 건강하지 않은 종교 단체에서 떠날 수 있었죠 . 기독교 교양은 많은 학생들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고 해요 . 나중에 10년 뒤에 후회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관심 없는 학생들도 있지만 , 교수님에게는 매우 보람된 일이라고 했어요 .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현대인에게 기독교가 답이 될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어요 . 예전 종교 시대에는 삶의 의미가 문제가 되지 않았죠 . 인간이 밥을 먹는 것과 동물이 밥을 먹는 것에 차이가 없지만, 종교는 일상의 작은 순간까지 구원해주기 때문이에요 .
종교의 힘을 통해 우리는 밥 먹는 행위조차도 의미의 내러티브(이야기) 속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요 . 내가 밥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다른 이웃들의 노동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이죠 . 이렇게 생물학적 욕구마저도 의미의 차원에서 구원받았어요 .
하지만 종교의 시대가 끝나자마자 허무주의가 찾아왔어요 . 더 이상 인간의 일상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된 것이죠 . 그래서 철학계와 심리학계(긍정심리학)에서도 80년대 말부터 '삶의 의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어요 . 종교가 사라지니 인간이 삶의 의미에 답을 못 하게 된 거예요 .
기독교 핵심 주제 4가지는 어떤 힘이 있을까요?
교수님은 기독교 신학자로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기독교가 풍부한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특히 기독교의 핵심 주제 네 가지가 현대 심리학과 철학이 말하는 삶의 의미 틀거리를 아주 풍요롭게 채우고도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 이 네 가지는 삼위일체 신앙, 창조 신앙, 십자가와 부활 신앙, 임마누엘 신앙이에요 .
1. 삼위일체 신앙 (사랑과 관계): 삼위일체 신앙은 이 우주의 근원에 '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줘요 . 이 사랑의 관계는 서로의 개성을 없애지 않으면서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죠 .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데, 그 관계의 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라고 했어요 .
2. 창조 신앙 (희망과 질서): 창조 신앙은 무질서(카오스) 속에서 질서(코스모스)가 생겨나는 것을 말해요 . 어둠에서 빛을 주고,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경계를 나누어 갈피를 만드는 것이죠 . 긍정심리학이 목표 설정과 효능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창조 신앙은 긍정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효능감과 연결되어 있어요 .
3. 십자가 신앙 (자기희생과 생명): 십자가 신앙은 삶이 자기 보존이 아니라 자기 해체, 즉 자기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줘요 . 하지만 그 자기희생이 얼마나 위대한 생명의 알맹이가 되는지도 함께 보여주죠 .
4. 부활 신앙 (느닷없는 희망): 부활은 우리가 고통스러운 현재 상황 때문에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때, 느닷없이 절망을 깨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능력이에요 . 현재의 입력값만으로 미래를 판단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했어요 . 부활 신앙은 삶의 의미에 다른 차원을 보게 해줍니다 .
임마누엘 신앙은 어떻게 우리 삶을 넉넉하게 할까요?
임마누엘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이에요 . 우리가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고, 내 이성으로 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뒷받침해주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요 .
미국의 한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이성적 탐구로 밝혀지는 진실은 한계가 있고 인간을 회복시키지 못할 수 있어요 . 하지만 은총의 힘으로 '내가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게 하는 진실은 우리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힘을 만들죠 .
임마누엘 신앙을 깨달을 때 우리는 넉넉함을 갖게 돼요 . 그런 넉넉함이 없으면 우리는 좁은 것 가지고 싸우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쉽게 삐지게 되죠 . 우리 삶의 깊이를 잃어버릴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 기독교의 깊은 주제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진정한 힘을 준다고 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