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화요일 저녁 김수경(28)씨는 식당에서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대 앞에 서면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식판을 정리하고 젓가락을 맞추는 이 공간은 김씨에게 낯설지 않다. 따스한 기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여기 심야식당을 다녔어요. 학교생활도 힘들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웠죠.”
김씨는 교실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늘 버거웠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어려웠고, 왕따를 겪으면서 사람을 피하게 됐다. 그 무렵 김씨가 발걸음을 옮긴 곳이 경기도 부천에 있는 ‘꼽이청소년심야식당’이었다. 그는 “처음엔 그냥 밥 먹으러 왔다”면서 “그런데 여기 선생님들은 제가 말을 안 해도 계속 불러주며, 그냥 와 있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그냥’이 김씨를 붙잡았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이유를 묻지 않는 밥상이었다.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의 봉사자가 됐다.
김씨는 배식부터 설거지까지 책임진다. “저도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말해주고 싶어요. 너도 특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6일 저녁 경기도 부천 새롬교회(이원돈 목사)에 마련된 꼽이청소년심야식당 안으로 짜장 냄새가 퍼졌다. 계란 지단과 김치, 군만두가 차례로 놓였다. 한 시간 남짓 준비가 끝나자 아이들 발걸음이 이어졌다. 편한 옷차림을 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이 뒤섞였다. 밥을 받아든 아이들은 숟가락을 움직였다.
이곳에서 만난 백준우(11)군은 “학원이랑 학교 때문에 만나는 친구가 늘 비슷한데, 여기 오면 다른 동네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며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셔서 급식보다 더 맛있다”고 말했다. 고도훈(11)군은 “여기가 또 안전하다고 생각하셔서 부모님도 여기서 밥 먹는 걸 좋아하세요”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2015년 문을 연 꼽이청소년심야식당은 지역 청소년들에게 저녁 시간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거점이다. 매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문을 연다. 짜장밥·떡볶이·소고기덮밥 등 다양한 메뉴로 40~50명의 청소년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꼽이는 2013년 부천 약대동에서 ‘꼽사리영화제’를 개최할 때 주민들이 만든 캐릭터 이름이다.
봉사자들은 꼽이청소년심야식당을 ‘밥상공동체’라고 부른다. 청소년 밥상을 매개로 지역의 어른들이 이모·삼촌이 돼 관계를 맺고 돌봄과 상담,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키우겠다는 취지다.
식당은 약대동에 있는 새롬교회(이원돈 목사) 약대중앙교회(이세광 목사) 약대감리교회(송규의 목사) 등 3개 교회와 경기두레생협 봉사단 팀이 매주 돌아가며 운영한다. 각각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다. 교단을 뛰어넘어 함께 사역한다. 매주 수십 명의 봉사자가 장보기와 음식 준비, 배식 봉사를 맡고 있다.
식재료 역시 각 교회가 매달 갹출해 마련한다. 지역 중식업체 굿모닝차이나는 취지에 공감해 10년째 한 달에 한 번 짜장 소스를 후원하고 있다. 기부와 나눔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밥상이 된 것이다.
식당 초기에는 부천시청의 양해를 얻어 체육관 주차장 등 야외에서 하굣길 아이들에게 밥을 나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야외 모임이 중단되며 전환이 필요했다. 지역에 개방된 공간을 가진 새롬교회로 자리를 옮기면서 지금의 심야식당 형태가 자리 잡았다.
이세광 약대중앙교회 목사는 이 사역을 ‘끊임없이 퍼줘야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눈에 드러나는 열매가 없을 때는 교회도 지치고, 성도들의 참여가 줄어들기도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지금 이 밥상을 멈출 수 없는 건 당장의 성과보다 다음세대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다음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일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봉사로 함께한 김경희(62) 권사는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도 좋지만 더 감동적인 건 이 아이들이 청년이 돼 다시 찾아올 때”라며 “그때 ‘여기서 받은 정’을 기억하면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부천=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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