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서양 문학의 대표적인 고전, D.H. 로런스의 『무지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 이 소설은 그냥 읽으면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알고 읽으면 훨씬 깊은 감동을 준답니다 . 특히 백락청 선생님이나 강미숙 교수님의 해설과 함께 읽으면, 서양 문학 작품인데도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인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해요 .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무지개'가 상징하는 '더 나은 삶다운 삶'을 향한 열망이에요 . 우리는 살다 보면 익숙한 삶을 이어갈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삶의 문을 열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죠 . 『무지개』 2권의 주인공 어슐라가 바로 이런 모험과 정신 개벽의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 어슐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여러분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
『무지개』는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요?
『무지개』 1권에서는 브랭일가 남자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여자들은 더 넓은 세상을 꿈꿨어요 . 그리고 마침내 3세대인 어슐라에게 와서, 근대 사회의 틀을 극복하려는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된답니다 . 하지만 어슐라의 첫사랑 스크리벤스키는 이런 도전을 포기하고 근대에 적응하는 데만 머물러요 .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인(世人)'의 삶처럼 말이죠 . 이처럼 근대 극복은 정말 어렵고,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줘요 .
로런스 작품에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요 . 그는 1885년 영국 노팅엄 탄광촌에서 태어났는데, 광부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어요 . 어머니는 아들들이 탄광촌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고, 로런스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대학 교육을 받고 교사가 되었죠 .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탄광촌의 삶에 대한 뛰어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답니다 . 톰과 리디아의 만남도 로런스와 그의 부인 프리다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고, 어슐라의 학교 생활 이야기도 로런스의 교사 시절 경험이 녹아있다고 해요 .
근대 학교의 모습은 어슐라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어슐라는 시골 학교의 견습 교사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해요 . 번역자인 강미숙 교수님도 대학 시절 이 부분을 읽으며 전율했다고 할 만큼,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성취와 좌절을 강렬하게 다루고 있죠 . 어슐라는 "자신이 평일의 삶을 감당해 내야 한다"며, 세상의 평가에 맞춰 행동하고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다짐해요 . 근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
하지만 어슐라가 만난 근대 학교의 모습은 생각보다 암울했어요 .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학교처럼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교육 풍경이었답니다 . 한 반에 50~60명의 학생들을 마치 기계처럼 다루며, 규율에 맞춰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고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었죠 . 어슐라는 처음에는 아이들을 개성적으로 대하려고 했지만, 결국 현실에 부딪히고 말아요 . 교장의 압력과 학생들의 반항 때문에 가장 말을 안 듣는 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려 굴복시키고, 강압적으로 기강을 잡게 되죠 .
이런 경험을 통해 로런스는 근대 학교가 인격이나 개성을 돌보기보다, 근대 사회에 필요한 인간을 기계적으로 양산하는 곳임을 고발해요 . 동시에 근대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거죠 . 학교에서의 고통스러운 경험 속에서도 어슐라는 견습 교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치열하게 공부해요 . 학위를 따서 이 세계에 자리를 잡으려 한 건데, 처음에는 진리의 전당이라 생각했던 대학에 큰 기대를 품었답니다 .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시장이었을까요?
그러나 대학에서의 경험은 어슐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줘요 .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파는 시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 위대하게 보였던 교수들도 사실은 지식을 파는 장사꾼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이 다루는 지식에도 무감각해진 존재들이었어요 . 라틴어 수업도 "중고 골동품 가게에서 골동품을 사고 시장 가격을 배우는 곳"처럼 느껴졌다고 해요 . 대학은 결국 시험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고, 돈 버는 기술을 배우는 곳, 공장을 위한 작은 실험실과 같다고 어슐라는 결론 내립니다 .
이런 실망 속에서도 정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업을 계속하던 어슐라에게 첫사랑 스크리벤스키가 다시 나타나요 . 겉으로는 낭만적인 연인이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부모 세대처럼 진실한 사랑이나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답니다 . 어슐라가 전통 사회와 개인적인 자아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스크리벤스키는 근대 사회의 기성 관념을 대표했기 때문이에요 .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개인의 행복이라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며, 자기 본연의 생명에서는 거의 죽은 상태였죠 .
사랑의 결투, 그리고 허위 의식의 실체는?
로런스는 두 사람의 육체적인 관계를 아주 특이하게 묘사해요 . 처음에는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곧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승리하는 '결투'처럼 느껴진다고 하죠 . 어슐라는 스크리벤스키를 파괴하고 압도하는 듯한 키스를 하고, 그가 항복할 때까지 맹렬히 잡고 있었어요 . 결국 그는 "소진되고 말살된 희생물"처럼 되었고, 어슐라가 승리한 듯 보였죠 . 하지만 곧 어슐라는 정신을 차리고 "미쳤었나 봐, 끔찍한 일에 쓰였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두려워해요 . 그리고 이 일을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를 다시 '애무해 되살려내기' 시작합니다 .
백락청 선생님은 어슐라의 이런 변덕을 '근대인의 허위 의식'이라고 분석했어요 . 허위 의식은 어떤 기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자신에게조차 진실을 왜곡하고 숨기는 의식을 말하죠 . 어슐라와 스크리벤스키는 자신들의 사랑이 결코 통속 소설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적인 의식으로는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예요 . 사르트르의 '거짓 믿음'과도 비슷하지만, 로런스는 이것을 모든 인간의 조건이 아닌 '근대인의 허위 의식'으로 보았답니다 .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인'들의 자기기만적인 삶의 방식과도 연결되는 부분이죠 .
어슐라는 스크리벤스키의 장교 부인이 되어 식민지 인도의 상류 사회에 편입되는 삶이 창조적인 모험이 불가능한 삶임을 알면서도 약혼을 감행해요 . 하지만 인도로 떠나기 직전 파혼을 선언하죠 . 뭔가 모를 그리움과 열망 때문에 괴로웠고, 마지막 만남에서야 허위 의식 없이 관계의 실상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어요 . 파혼당한 스크리벤스키의 반응도 흥미로운데요 . 그는 불편한 모험을 이끌던 어슐라가 떠나자 안도감을 느끼지만, 밤이 되면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실존적 불안에 시달린답니다 . 낮에는 항상 사소한 일에 몰두하며 만족했지만, 밤의 어둠과 침묵은 견딜 수 없었던 거죠 . 로런스는 스크리벤스키를 통해 근대인이 본래적인 자신을 탐구하지 않고 거짓 믿음과 허위 의식만으로 살아갈 때 겪는 실존적 불안을 보여줘요 .
허위 의식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무지개를 향해 나아가다!
파혼 후 집으로 돌아온 어슐라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와요 . 자신이 임신했다고 생각한 어슐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버리고 스크리벤스키의 아내가 되어 기성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결심해요 .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허위 의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방황하던 어슐라는 들판에서 야생마들을 마주하는데, 이 말들은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허위적인 삶을 택하려는 어슐라에게 '정신 차리라'는 계시를 주는 것이죠 .
이후 어슐라는 고열에 시달리며 자신의 내면, 즉 허위 의식과 싸워요 . "왜 이 허위가 일이 오래 지속되는가? 왜 그녀는 미망에서 깨어나 선명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가?" . 죽음과 정신 분열의 경계까지 갔던 어슐라는 마침내 이 시련을 이겨냅니다 . 허위 의식의 껍데기를 모두 벗어던지고 '맑간 도토리 알맹이'처럼 유일한 진실이 된 어슐라는 정신 개벽의 순간을 맞이하죠 . 백락청 선생님은 이 경지가 공자가 말한 '인(仁)'의 경지와 같다고 보셨어요 .
허위 의식을 모두 떨친 어슐라는 자신이 임신했더라도 스크리벤스키에게 가지 않았을 거라는 진실된 판단을 내리며, 근대 사회가 요구하는 껍데기뿐인 삶을 최종적으로 거부해요 .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슐라는 창밖으로 탄광촌의 지저분한 현실 너머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발견하죠 . 이 무지개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존재로, 허위적인 근대식 사랑 너머에 다른 차원의 진리와 삶의 창조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답니다 .
『무지개』는 우리에게 근대인의 허위 의식에서 벗어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진리를 알아보고 결단하는 '정신 개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줘요 . 로런스, 하이데거, 그리고 백락청 선생님 모두 '근대'를 화두로 삼아 깊이 사유했던 것도, 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죠 . 과학 기술과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는 석가모니 시대보다 훨씬 복잡한 현실을 만들어냈어요 . 우리가 이 근대 사회의 핵심을 직시하지 못하면 인류와 지구가 공멸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 기술을 버릴 수도 없으니,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혜를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소태산 박중빈 선생님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외치셨죠 . 근대 자본주의 물질 문명 속에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일상 속에서 마음공부와 훈련을 통해 정신 개벽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답니다 . 로런스의 『무지개』는 서양 문학 작품이지만, 이런 동양적인 '개벽 사상'과도 통하는 부분이 많아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 『무지개』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속편인 『연애하는 여인들』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더 깊이 있는 근대 극복에 대한 비전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거예요 .
지금까지 D.H. 로런스의 『무지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